함박눈이 멈출 생각이 없나 보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폭설주의보가 내려서 할 수 없이 집안에만 있는 중에 폰 알람이 울렸다. 평소의 알람 소리와 달라 얼른 폰을 확인해보니 밴드 어플의 메신저 알림이었다. 나는 취미활동을 하기 위해 사진 동호회, 여행 동호회, 골프 동호회에 가입되어있다. 얼마 전 유럽여행을 계획하며 여행 동호회에 궁금한 사항들을 올려둔 적이 있었다. 서유럽 코스와 비용 등 고수님들의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질문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서 메신저로 답장이 온 것이다.
보통 밴드나 페이스북 등의 메신저는 잘 확인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궁금해했던 내용의 답장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고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메신저는 길어졌다. 여행 이야기에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생기면서 그 뒤로도 종종 서로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중에 공감할 수 있는 게 하나씩 추가되면서 우리는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게 되었다. 표정도 없고 감정 전달이 어려운 문자의 단점 때문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군산에 사는 영미라고 해요”
“네 저는 제주에 살고 있는 은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사업하러 내려왔어요”
“아.. 네.. 그러시구나”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난 가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나이 서열을 하고는 한다. 나보다 어리면 살갑게 대하면서 챙겨주고 싶고 나보다 윗사람이면 애교 섞인 어리광으로 친근함을 표현한다.
“저 73 소띠입니다”
“어머~저랑 동갑이시네요. 괜찮다면 우리 친구 하실래요?”
“하하 편하실 대로요”
“넌 제주도에서 무슨 사업해?”
갑자기 말을 놓는 내가 당황스러웠는지 크게 웃는 은석.
우린 그렇게 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친구가 되어갔다.
우리 가족은 은석이가 짜준 여행 가이드 덕분에 3주간의 유럽여행을 알차게 다녀올 수가 있었다.
여행담을 늘어놓을 때면 맞장구를 쳐주며 내 얘기에 집중을 해주었고 마치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대화를 하고는 했다.
서울 출신인 은석은 일찍 사업에 실패하고 폐인이 되어 지내다가 제주도 친구의 권유와 도움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기사업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어 젊은 사장치고는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업은 날로 번창해 나갔다.
만남
어느 날 갑자기 군산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제주도 친구들과 군산 CC로 골프 라운딩을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골프를 하는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난 그 당시 골프에 입문해서 한참 재미를 들이는 중이라 너무 반가워하며 또 하나의 공감대가 생긴 것에 들떠 시간이 가는지 모른 채 수다를 떨었다.
군산에 언제 갈 예정이니 맛 집 투어를 책임져 달라는 말에 난 최선을 다하리라 굳게 약속했다.
운동을 마친 뒤 어느 식당으로 오라는 연락을 남겨두고 내 나름대로의 멋을 냈다.
통화로만 연락하다가 실제 만나보기는 1년 만이다. 설레었다. 왜 설레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일인 것은 분명했다.
군산에서 알아준다는 가성비 좋은 식당이니 좋아할 거라 자부하며 신나게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네 명의 건장한 남성들.
제주 친구들인지 금 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우르르 오더니 너무 친근하게 상에 둘러앉는다. 그런데 정작 누가 은석인지는 알아보지를 못했다. 카톡에도 밴드에도 얼굴 사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늘 카톡 사진에 얼굴 사진을 올려놓았기 때문에 은석이는 나를 알아본 것이다.
함께 동행한 친구들은 그런 사연의 만남을 하게 된 은석이와 나에게 “대박, 대박”을 연신 외쳐댔다. 다행이다. 내가 상상했던 은석이는 실제 귀공자 같은 외모와 핸썸한 얼굴이었고 행동 하나하나 손끝 하나까지도 점쟎고 결이 고운 남자였다. 친구들은 마치 은석이와 내가 연인 사이라도 되는 듯 몰아갔다. 웃고 떠들며 우리는 친구가 되어 우정을 만들어 갔다.
그러나 제주도에 가지 않는 한, 군산에 특별한 일이 있어 오지 않는 한, 우린 서로 통화를 하거나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에서만 소통할 뿐 어떤 왕래도 없었다.
외로움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다. 울리는 폰을 보니 그의 전화였다.
늦은 밤에는 서로 전화를 한 적이 없었기에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술 많이 마셨어?”
묻는 말에 대답도 못한 채 차에서 잠이 들었는지 한참 침묵이 흐르더니 대리기사 목소리만 들렸다.
“사장님 집에 다 와갑니다. 일어나세요”
다음날, 그다음 날도....난 그에게 먼저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며칠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은석이도 나와 같은 생각에 전화를 못하는 걸까?'사실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 맞는 건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에게 전화를 잘 못 걸었던 건지.
술에 취했더라도 다음날 폰에 나와 통화한 기록이 있을 텐데 며칠째 아무 말 없는 은석에게 점점 화가 났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밴드에서도 어느 날부터 말이 없더니 언제 퇴장했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나도 밴드에 남아 있는 게 왠지 주인장 없는 집에 혼자 있는 느낌이어서 퇴장했다.
은석이라는 이름만 기억에 둔 채 또 1년이 지났다.
작년 여름 내 생일이었다.
카톡에 생일인 친구가 뜨는 기능 덕분에 생각난 김에 전화하는 거라고 주저리주저리 굳이 변명 같은 분위기를 하며 축하 인사 전화가 왔다.
“이삐 영미~ 잘 지냈나~생일 축하한다~!”
“으이그~고맙다. 친구밖에 없네”
잠시 조용하더니 혁진이가 입을 어렵게 떼는 듯한 말투가 느껴졌다.
“혹시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은석이.... 며칠 전에 하늘로 보냈다. 미안하다”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로 뭐라고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생일선물로는 너무 잔인했다.
살아있는 내가 더 용감하다
그 뒤 몇 개월이 지난 10월. 난 제주 이곳에 다시 와 있다.
허기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음악 리듬에 맞춰 머리를 끄덕이며 다시 창 밖만 바라보는데 “ 아까 은석이 얘기 뭐 물어보려고 그랬어?” 혁진이는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눈치였다.
“ 아니, 왜 그렇게 된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첫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장으로써 위신이 떨어지고 신뢰감마저 잃었던 은석.
제주에 내려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족들이 외면했고 외롭게 혼자 제주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뜻밖에 대성공해서 단시간에 빚도 갚아냈고 집을 마련해 가족들을 제주로 불러 예전처럼 단란한 가정을 지키려고 했다.
그런 중에 많이 외로웠나 보다. 단 시간에 성공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테고 타지에서의 텃세 또한 만만치 않았을 테지.
별장을 마련했다고 제주 오면 꼭 별장을 이용하라고 할 때마다 이젠 형편이 좋아졌나 싶은 마음에 나 역시 마음 한편 놓았었는데....
가족은 모르는 별장. 전날 밤의 통화에 걱정이 돼서 혁진이가 찾아가 보니 약을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에게 전화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기 마음을 알아줄 연인이 필요했던 걸까. 난 왜 다음날 용기 내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제주에 와있는 내 모습을 보며 또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