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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Aug 03. 2022

엄마가 죽었다, 판타스틱 우리 엄마

        - 삶의 꽃, 죽음의 복

     안녕


엄마가 죽었다

이런 환장할 새파란 놈의 슬픔


엄마를 묻고 집에 왔다

밤새 비가 내렸다


엄마, 사랑해

고마워, 행복했어




1935 장흥 향양(香陽), 향기로운 볕 환한 꽃 이어!

장흥읍 향양리 월평마을 1남 3녀의 막내딸

겁 없고 똑똑하고 자애롭고 당찬 부잣집 막내딸

사랑받는 아름다움 꽃은 그렇게 푸르릇 푸르릇 자라고

예쁘고 오똑한 찬란한 꽃 향기 나는 볕 아래 잘도 자랐지

꽃으로 피어난 우리 엄마여, 온통 사랑 가득 품은 환한 꽃 이어


1956 곰재(웅치熊峙), 폭풍 같은 삶의 굽이어!

지적 고매 잘생긴 남편 고상하고 자애로운 시아버지

그러나 가난을 향한 가파른 내리막 집안의 종부, 그 혹독함

생의 날 선 언덕 시작되고 고결한 믿음의 둥치, 시부 돌아가시고

가장은 흔들리고 아이들은 태어나고 자라고 태어나고 일곱 남매 이루고

어깨와 등뼈 삭신은 녹아가고 위장은 뒤틀려 생사를 넘나들던 날들

남광주 양동시장 놋쇠그릇 이고 지고 사고팔고 무릎은 꺾이고 닳아간다

중리 떡방앗간 식당 차려 살 놈은 살아간다 방도는 만들면 된다 외치고

의지는 하늘에 닿고 신념은 새벽마다 매달리는 생목으로 질러야 했던 기도들

아이들은 자라고 서울로 부산으로 흩어지고 모이고 푹푹 자랐다

남겨진 자식들 떠나간 자식들 식구들 무겁게 무겁게 얹혀있던 시절

떡방앗간 식당 과감한 정리 더 과감한 서울행 무모한 미아리행

엄마는 달린다, 결심했다, 까짓 거 해보면 되는 거지, 가자 가자


1985 미아리, 그 차디찬 맨땅에 헤딩 이어!

서울, 가난한 이들 그나마 살기 수월타한 미아리 길음동 산동네

눈치 볼 거 없다잉, 그냥 시작하믄 되는겨, 살아야지 우짠다냐

길음시장을 누빈다 하면 되는 것 살면 살아진다는 그것

노점이면 어떻고 멸치 소금 당면이면 어떠랴

새끼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생장해내던 리어카

잊지 못할 엄마의 리어카 그 위에 실어 나른 새끼들의 푸른 꿈

푸른 꿈 영글어 열매 맺어 자라나는 손자들을 맞이하고

생은 그렇게 무릎 깽키고 허리 굽고 상하여 아파도

생은 그렇게 무지개 피우고 바람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1987 작은 돌산 그리고 성바오로 병원, 아버지 아버지여!

아빠 아버지 우리들의 높은 자랑 울 아버지 정승*씨

높고 똑똑하고 외롭고 잘생기고 쓸쓸한 나의 아버지

홀로 고요히 읽고 쓰고 낭랑하게 처량하게 서 있던 아버지

온전히 돌아보고 온전히 고요하고 온전히 침잠하던

한여름 순식간 응급실 6시간 만에 홀연히 떠나버린 아버지

사랑하고 보고 싶고 이런저런 도란도란 말 많이 정 많이

만지고 붙들고 상의하고 듣고 보고 혼나고 제 자리 찾아주는

그런 아버지 그런 아빠 꿈에도 그리던 그런 아버지

유정천리 그 노래 그 가락 아련한 기억 수도 없이 되감던 아버지

아, 지금도 보고 싶은 아빠 아버지 아빠 아버지


엄마 거기 가셨어요, 엄마 거기로 가셨어요

부디 둘이 새끼들의 흠모 새끼들의 그리움 가득 안고

생이 이리 가득 따스하고 좋았다고 힘이야 들었어도 좋았다고

새끼들 한 소쿠리 모여 잘 살아 가볼게요 기도하고 기다려요


2022 돌아와 보니 강산, 새끼들이 태어난 자리여!

아들 딸 사위 손자 6남매 새끼들 여덟 손주 안겨주고

미아리 길음 뉴타운 안온한 삶의 터 아련한 정인교회 기도 자리

이뿌고 곱게 늙어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우리 엄마

수영하고 요가하고 문창반 시사랑회 시 쓰시고 시집 준비하던 우리 엄마

엄마, 그렇게 곱게 늙었다

엄마, 그렇게 곱게 놀았다

엄마, 그렇게 곱게 살았다


7월 25일 월요일 밤 응급실행 그리고 39시간 8분 만에

7월 26일 화요일 아침 중환자실 그리고 29시간 8분 만에

7월 27일 수요일 오후 1시 8분 엄마의 얼굴을 만지고 부비고 부짖었다

손 꼭 잡고 금방 보자고 곧 보자고 간단한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엄마 파이팅 엄마 파이팅 그러면서 떠났는데 헤어졌는데

밤새 주무르고 두피 마사지해달라시고 침대 위에서 팔 나란히 뻗고

허리를 흔드는 시범 보이시고 운동하라고 기도하라던 우리 엄마


엄마 죽었다 엄마 떠났다 죽음의 복 넘치게 받고  단호하고 엄숙하게

여름 한낮 붉고 단단히 빛나던 우리 집 대밭 동백꽃 한 송이 똑 부러지듯

엄마 죽었다 엄마 떠났다 겁 없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걱정 말고 내 말만 믿어 슬퍼도 말고 울지도 말고

엄마 안 그랬냐 사나흘 아프다 죽으믄 좋것다고 평생소원이라고 기도한다고

존일이다 이것은 존 것이어 그리 알고 울지 말어 울어도 짧게 울어라잉


엄마 목소리 들린다 엄마 냄새가 그립다

성주호세 예후희훈 동진동렬 도윤재윤

그들의 날들에도 우리 다 그러겠지 울지 마 슬퍼 마

그래도 엄마 그래도 엄마 아직은 울고 여전히 슬퍼

참아도 쏟아지는 이 그리움 엄마가 받아줘 들어줘


그리하여 엄마, 엄마는 멋졌어 판타스틱 우리 엄마

엄마는 최고였어 엄마의 새끼들이어서 엄마의 자랑이어서 좋았어

새끼들 한 놈 속 썩이고 가슴 에리게하는 일 없었다고 늘 말했었지

엄마도 곧고 반듯하여 속 끓이고 맘 보타지게하는 일 단 한 번 없었어

우리의 엄마여서 우리의 엄마여서 고마워 엄마 애썼어 엄마 사랑해


그리하여 엄마, 사랑해 고마워 엄마, 안녕 잘가

홀로 고요히 엄마를 지키는 저 성경책은 엄마와 함께 먼 여행 함께 떠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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