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체 Mar 26. 2023

자란다는 것

2023 서울마라톤이 끝나고

 딱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일요일, 3월 19일 오래전 기억처럼 선명한, 뚜렷한, 잘 보관된 질 좋은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23년 서울마라톤을 기록한다. 아침 일찍 성계단에 모여 힘들지 않게 쉬엄쉬엄 훈련을 하고 동한사우나 들러 온냉탕 반복 5회전을 하고 학원에 앉아 김필의 노래를 들으며 쓴다. 지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그 말을 다시 되뇐다.


 작년 11월 제마(jtbc마라톤)의 아픔들을 오래 몸에 새겼다. 쥐가 난 상태의 원인으로 파악된 '오버페이스'와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달리지 못하고 걸어야 했던 30k 이후의 체력고갈 상황. 이 둘을 극복하고 재연하지 않겠다고 겨울 내내 탄종(탄천종합운동장)을 즐겁고 신나게 엄하게도 달렸다. 틈나는 대로 복근과 하체 강화  목적의 보강운동도 꽤 했다.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잡아당기는 뉴하복근과 피치를 1000개씩 했다.


 지난겨울 동안의 서마대비 100일 프로젝트는 나한테 운동의 루틴을 심어줬다. 매일 퇴근길의 10k 러닝과 주말 프로그램 완전한 수행의 루틴을 몸에 붙였다. 자전거나 다른 운동을 일체 들여놓지 않았다. 비장했다. 그렇게 100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둘째의 입시가 끝났다. 좀 더 마음 편히 절반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나름의 충족이 있었다. 결과에 대한 자신이나 확신보다 운동을 하는 과정들이 몸에 좋은 약처럼 쌓였다. 20  30  40 20킬로를 달려주는 장거리(LSD) 훈련도 다 잘 따라갔다. 그렇게 지난 주가 되었다.


 목감기가 있어 침 삼킬 때 통증이 있었다. 약을 받아 하루 먹고 입맛이 없어지길래 그냥 먹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화요일 오전 운동 후 사우나에서 냉온탕 오가며 몸을 풀어주고 수목금은 온전히 쉬었다. 토요일 5킬로를 가볍게 달렸다. 수요일 이후엔 육단백은 끊고 깊은 수면을 위해 커피도 끊었다. 탄수화물을 더 먹어주려 노력했다.


 대회날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커피를 끊고 며칠 깊은 잠을 잤다. 놀라웠다. 일주일 지난 오늘까지도 커피를 거의 줄였다. 깊고 질 높은 잠이 참 좋았다. 다행히 당일 아침 변을 잘 보았다. 샤워를 하고 가볍게 떡 두입을  먹고 준비한 그대로 순서대로 입고 챙겨둔 대로 들고 5시 반경 1150번 광역버스를 탔다. 교보 로비에 도착해 일행들을 만나고 화장실을 두 번 가고 오픈케어 동지들 친구들 만나 워밍업과 질주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두 번 더 화장실을 다녀왔다. 출발 순간까지 정확하고 완전하게 소변에 대한 욕구나 불편함이 일절 없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번 겪는다.


 나의 공식적인 두 번째 대회가 시작되었다. 8시 25분경 그룹 E가 출발한다. 맨 앞줄에 대기해서 오픈케어 동무들 여섯 명이 둘씩 세줄로 출발했다. 남대문을 돌아 청계천 ddp 동대문을 돌았다. 지루하고 분주하고 복잡했다. 발길을 조심했다, 매우. 사람은 많고 길은 좁다. 동대문을 지나 신답 어름이 되자 속아낸 듯 길이 조금 여유가 있었다. 하프도 지났다. 지난 제마의 실패는 대부분 오버페이스가  이유였다. 절대 1킬로당 520 페이스를 넘기지 않게 발을 붙잡았다. 달릴 시간은 많고 원 없이 달리게 도와주겠다며, 심장과 무릎과 폐에 제발 520을 사수하자 말했다. 앞에서 끌고 가다 교대를 하고 다시 여섯이 촘촘했다가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그 순간 과도한 동작과 속도를 급히 올리지 않으려 세심히 근육들을 어루 달랬다. 25k 정도 어디선가 미세하게 쥐의 느낌이 왼쪽 사타구니에 왔다. 온 신경이 솟았다. 오른발로 케이던스를 맞추고 쉰을 셌다. 비상용 크램픽스를 먹었다. 출발 직전에 하나를 먹고 소식 없어 먹지 않길 바랐지만 두려움으로 먹었다.


 30킬로 지점을 넘기면서 가라앉고 페이스와 케이던스도 일정하고 안정되었다. 롯데타워가 보이면서 잠실대교만 건너면 된다고 다독였다. 다리를 건너며 이번 대회는 쥐, 경련, 주저앉아 난간 잡는 일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두려움이 기쁨과 희열로 바뀌었다. 잠실대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길었구나. 달리고 달리고 존중해  마땅한 오픈케어 응원단을 만났다. 고마운 손들이 레몬을 건네줬다. 두 개를 받아 힘을 다해 씹어먹었다. 세상 달콤한 그 시디 신 레몬의 달콤함에 지금도 입안에 침이 돋아난다. 잠실대교를 건너고 사거리를 지나 우회전을 했다.


 5단지 2단지 1단지 30여 년 전 일하고 아내와 데이트하던 그 동네를 달렸다.  다 왔다고 힘을 냈다. 속도는 크게 올라가지 않았다. 종합운동장 진입 후 전심전력 다해 뛰었다. 345는 충분할 거라 믿었다. 520 페이스를 주욱 지켜왔다고 생각했다. 총 달린 '타임'체크를 안 했다는 생각은 골인 후에야 들었다. 3시간 46분 16초. 실망보단 기쁨이 크고 대견함에 어깨를 감쌌다. 잘했다, 노체여.


 같은 그룹 동무들을 만나 환호하고 좋아했다. 전철 타고 동한사우나에 들렀다 아내랑 지인들 계신 커피숍에 들러  맘껏 축하하고 감사하고 순댓국 먹고 가장 큰 환호와 탄성을 받으며 집에 들어왔다.


 이렇게 2023 서마가 끝났다. 오는 11월 5 일 2023 제마 준비벌써 시작되었다. 사람이 단순하고 영리했다. "오버하면 뒤진다, 달리면 닿는다, 신나고 즐겁게 가장 가볍게 달리자." 그게 다였다. 한 뼘 자랐다. 작년 11월 제마 4시간 25분보다 많이 줄였다. 더 단순하고 간단하게 살아간다. 달리고 읽고 쓰고 일한다, 그게 다다. 생의 사진 한 장이 생겼다. 그새를 못 이기고, 딱 일주일 사이에 강원도 속초고모가 돌아가셨다. 고모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빠랑 잘 만나고 서로 웃고 울고  행복하시길 빈다. 나는 11월 5일을 향해 또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