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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체 Aug 29. 2022

마른 고마움 : 참견의 폭력

 - '아씨발'보다 얕고淺 엷은薄 입들

 일요일 오후 두 .

 다섯 시 약속까지 남은 세 시간,  무엇을 할까. 아침 늦잠으로 다녀오지 못한 남한산성 계단에 갔다. 4단까지 두 칸씩 10회전이지만, 혼자라는 이유로 7회전만 하자. 남한산성 계단에 훈련 온 것이 대견하다.

하남시 학암동 산 85-2 이곳에 240여 계단이 곱게 놓여있다.


 정류장 주위에 산행객들의 차가 꽤 주차되어 있다. 빈자리 찾아 주차를 하고 물 한병 들고 천천히 내려간다. 웜업으로 가벼운 타이밍 피치 6단까지 2회전을 했다.  이제 시작이다. 두 칸씩 4단 전력을 다한 호흡과의 싸움. 1분 이내에 4단까지 오르면 최고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숨 넘어간다. 4단 계단참에 놓인 벤치에 쓰러져 물을 마실 틈도 없다. 숨 쉬어야 하는데, 숨 쉬느라 무거운 다리를 어찌할 줄 모르는 순간이다. 다리가 숨과 폐를 잡아당겨서 두 손으로 다리를 누르고 가슴을 제치고 온 힘 다해 숨을 쉰다. 이것은 훈련이다. 이것은 실제 훈련 상황이다.


 물병을 놓고  네 번째를 향해 내려가는데 예순 안팎의 두 남자와 한 여자분이 벤치에 앉으신다. 네 번째를 해야 한다. 쉬는 시간은 3분인데 오늘은 4분으로 한다, 혼자니까. 그렇게 숨이 머리끝에 닿아 눈으로도 숨을 쉬고 땀으로도 숨을 쉬며 네 번째를 해냈다. 그 순간 숨 쉬느라 쓰러진 나한테 대뜸 말한다. 다 죽어가는 나를 향해 느리고 천천히 대뜸.


남자 1 : 당뇨여어? 고혈압이여어?

나 : 아니오. 아니여요. 헥헥.

남자 1 : 근디, 뭘 그렇게 고생을 혀어?

남자 2 : 운동하는 거네. 운동하는 .

남자 1 :  뭔 운동을 그리 심하게 해? 무릎 다 나가겠구먼. 땀도 너무 흘리면 몸에 안 좋아.

나: (숨 좀 돌렸다) 달리기 훈련해요, 달리기.

남자 1 : 에고, 그래도 무조건 살살해야 돼. 심하면 다 안 좋아. 살살해야 돼.

여자 : 아, 그러니까. 지난봄에 그 아래 동네 사람. 맨날 뛰어다니던 그 사람. 갑자기 뛰다가 쓰러져서 ㆍㆍ.

나 : (마저 듣지 않고 훌훌 내려왔다)ㆍㆍㆍㆍ.


 내려오면서 며칠 전의 고등학생 '아씨발뭐야'가 떠올랐다. 그니의 단순하고 즉각적인 단말마에 비해 이 '집단' 세 분의 린치는 세다. 폭력은 언제나 반응을 일으킨다. 내 속에서 일어난 분노는 쉬 잠재워지는 간단한 계통의 느낌이었다. 하찮고 천박한 버리는 말들. 그들은 길에 마구 쓰레기를 버렸다.


 여섯 번째 오르는 데 그들이 내려왔다. 여자분이 말했다. "저 땀 좀 봐. 아이고, 내가 다 숨 막히네. 숨 막혀. 아이고, 살살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건네고 있는 힘을 다해 오르고 뻗었다. 계속 맴돌았다. 그들의 말이 아니라 나의 '고맙습니다'라는 작은 말. 이것은 '하얀 거짓말'처럼 뻔한, 가식의, 형식의, 대강의 죽은 말. '마른 고마움'이라 부르자. 말라버린 채 아무 감정도 전하지 않은 채, 공중에 흩어지는 부서진 말. 고맙진 않으나 '고맙다가 어울리는 순간'의 말. 그들의 가는 길을 그대로 가게 하는 꼿꼿하고 하찮은 말.

다리는 신발에 앉아 평화롭고 물병은 열려 손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들의 참견은 무얼 남겼을까?

 사라진 뒷모습을 멀리 들어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들의 하산길 걸음들을 보았다. 운동하는 사람에게 대뜸 고혈압이나 당뇨 환우들의 불가피함을 들이댄다. 절박한 환우들의 막다른 길의 운동이었으면 어찌 했을까. 위로? 격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부를 전하는 게 나쁘진 않다 해도, 어쩌자고 운동하는 사람 면전에 무릎이 망가지고 달리다 길 위에서 쓰러지는 정황을 들이댈까?

 막무가내와 단무지의 직진과 눈치 1도 없거나 아예 안 봄은 옳은가. 주책은 왜 나이를 동반하는가. 집단은 왜 용감한가. 정의로운 참견과 간섭은 있는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뛰어가 안아 올리는 참견도 참견이라 부르는가. 온갖 의문들이 머리를 채운 채 어지럽다.

 

 하산길에 차는 많고 길은 막힌다. 땀에 몸은 덥고 마음은 개운하다. 운동의 끝에 오는 늘 그 상큼한 노곤함이 있어 좋다.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다. 입과 혀만 잘 가두어도 온전하고 화평한 삶에 가깝다. 운동을 하고 매일 달리고 매일 마음 소리 듣고 다시 달려도 입과 혀의 단순한 욕망을 다스리기 어렵다. 깊은 내공의 면벽 십 년 스님이 될 수는 없을까 곰곰 묻는다.

 가을이 온다. 입을 닫고 땅으로 사라지기 위해 몸을 뒤집고 옷을 갈아입는 느티나무 잎새들을 찬찬히 바라보자. 말을 걷어낸 자리에 글을 잇대 삶을 채우자. 가을이 온다. 고마운 일이다.

참나무 밤나무 갈나무들의 가을이 하늘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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