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휴식시간. 김광석을 들을까 하고 유튜브에 들렀다. 반가운 얼굴이 불쑥 바로 밑에 있다. 법정스님 2003년 10월 2일 부산 강연이다. 7천여 명이 모였다. 삶의 가치. 남을 돕고 산다는 것의 의미. 지구 아픈 것 등 스님께서 차분하고 격정적인 강연을 하신다.
목소리는 정정하시다. 바르고 따뜻한 말들이 가지런 흐른다. 우연하여 더 반갑고 애틋하다. 오랫동안 연락되지 않는 보고 싶은 메트로형 만난 기분이다. 책장을 찾으니 '무소유' 나온다. 40여 분 동영상을 다 듣고 책을 편다. 앞에 써 놓은 글자들 곰곰 다정히 읽다 앞장 여백에 메모된 p.133을 찾아 읽어본다. '살아남은 자'라는 소제목으로 길지 않은 한 꼭지다.
그날 일을 마치고 저마다 지붕 밑의 온도를 찾아 돌아가는 밤의 귀로에서 사람들의 피곤한 눈매와 마주친다. "오늘 하루도 우리들은 용하게 살아남았군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 살아남은 자가 영하의 추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화목에 거름을 묻어준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남은 자들이다.
(무소유 p.133 범어사 2010 (2판 77쇄))
망우리를 지나며 무덤들을 보고 우리 모두 아직 가지 아니했을 뿐 곧 가게 될 일을 얘기하신다. 강연 마치고 7년 후 돌아가셨다. 얼마나 마음 서운했는지 생생하다. 맑고 따뜻하고 벼린 날처럼 강단 있으시던 스님이 오늘 소식도 없이 불쑥 오셨다.
법정스님 책을 읽는다.
삶이 항상 햇살과 볕 속에 놓인 날도 아닌 채
문득 눈물 흐르고 연민 놓일 때 스님 모습 떠오른다.
맑고 푸른 한 여름 나뭇잎 같은 스님
잔잔하고 평화로운 눈빛
세월 흐르고 스님 떠나신 지 오래
세상은 한갓 좋아지지도
나아지지도 아니한 채 간다.
스님의 목소리 듣고 잔잔하련다
겨울 영하 6도
그렇게 물은 쨍하니 흐른다.
(2017. 2. 10 CHBH)
책 앞장 메모가 이렇게 씌어있다. 오래 전도 아닌데 기억나지 않는 자리다. 어디에서 어쩌다 쓴 것인지 모를 글자들이 잠잠하여 다행이다. 오늘 하루가 퀭하려다 스님 목소리 스님 글에 꼭 찼다.
책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찾아오길 기다린다. 한 번도 닿지 않은 여행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