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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r 25. 2017

과제 하나

노총각 친구

한 여름을 한 생으로 산 저 풀은

또 저만한 생을 살아갈 흔적들을 남기고

첫 서리에 숨 죽였다

소금에 절인 것도 아닌데

하얗게 센 머리 뒤로 하고

고개 숙인 한 생을 보노라

내년을 기약하는 뿌리도

다음 생을 바라는 씨앗도

눈에 띄지 않지만

푸른 풀 죽었다고 다 끝난거 아니라고

천 년 산다는 은행나무는 노랗게 속삭인다


반백 앞두고 딸아이 돌잔치한다는

동기 소식에

손주볼 때까지 건강하라 덕담하고

사랑할 웬수 하나 두고픈 노총각에게

너는 언제쯤 소식 전하냐 묻는다


아서라, 어느 세월에

답하며  마냥 웃는 녀석 머리는 광채가 난다

그걸 보며

머리숱 없다고 포기하긴 이르다고 말없이 속삭이며

신수 좋은 녀석에게 남은 과제를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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