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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Sep 05. 2016

해석의 달인이라 불러다오

'일 벌었다'고 쓰고 '일자리 구했다'고 읽는다

"일 벌었어요."  ".....아, 네~ 축하해요!"

해석은 변하기 마련이다. 상황과 시대가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해석하는 이의 시선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어떤 해석이 최종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도그마요, 종교와 다를 바 없다.


만일 "일 벌었어요" 라는 말을 한국인이 했다면, '일 벌어? 일 벌렸다고? 무슨 사고 쳤나?' 아니면 '어떤 사업을 시작하는구나'라고 해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을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 했다면 해석은 달라진다. 


3주 가까이 용인이주노동자쉼터를 이용했던 방글라데시 출신 '하림'은 말수가 적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고용센터를 다녀온 후엔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었던 그는 숫기가 없어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일요일 무료진료가 끝날 즈음에 사무실을 찾아와서 한 말이 "일 벌었어요"였다. 


앞뒤 설명 없이 '일 벌었다'는 말에 잠시 잠깐 무슨 말인가 했지만, 곧 '일자리를 찾았다'는 말임을 알아챘다. 서툰 한국어로 저녁에 회사에 들어갈 것과 쉼터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다시 놀러오겠다는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나갈 때 '이러저러해서 나간다'고 알려주면 좋지만,  단촐한 가방 둘러메고 말없이 훌쩍 가버리는 일은 이주노동자쉼터에선 예사다. 며칠 전에도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했던 캄보디아 이주여성노동자 둘이 떠났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둘은 농업노동자로 한국에 왔는데 폭염이 기승부리던 여름내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쉼터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들에게 한국어교실에라도 함께 해 보라 권했지만, 빨리 일자리를 정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인지 그들은 어딘가를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랬던 그들이 추석이 가까워 오면서 일손이 필요한 농장주를 만나 급하게 떠났던 것이다. 


한 마디 말없이 훌쩍 떠난 둘에 비하면 하림은 떠날 때도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추석 앞두고 일자리를 찾은 그가 회사에 잘 적응하고 '일만 벌게' 아니라 '돈도 벌어서' 코리안드림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자뻑인 줄 알지만,"일 벌었어요'를 "일자리 찾았어요"로 해석할 줄 아는 나는 해석의 달인이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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