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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Oct 29. 2017

사망 원인도 규명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사람들

알렉산드르가 패혈성 쇼크로 죽은 이유

이주노동자들과 만나다 보면 죽음을 대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 산소용접 중 발생한 화재사고로 부상을 당했다가 패혈성 쇼크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이 죽었다는 소식에 유수프는 사고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운명이라고 했다. 


“그것은 동정이지만 운명이에요.”
 “인샬라라는 거지요?”

“네. 그런데 12일 사고 났어요. 15일 병원 갔어요. 왜?

“그건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요. 사고 났을 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이유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사고를 감추려고 했던 건지 좀 더 확인해 봐야 해요.”

“우리 회사 외국사람 아파요. 사장님 말해요. 아파? 병원 안 가요. 계속 아파요. 우리 그거 가져갔어요. 맹장 수술 했어요. 잘 가져왔어요. 안 가져왔으면 죽어요.”


사람을 ‘그거’라 말하고, 데려갔다는 말을 가져간다, 가져왔다고 했지만, 유수프가 하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로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단열재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유수프는 고려인의 사망 원인이 아프다고 했을 때 심드렁하게 대처한 사업주에게 있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사장들은 누군가가 아프다는 호소를 해도 참으라 하기 일쑤였고, 병원에 데려다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망사고에 이르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유수프는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도 그런 경우였다고 봤다. 


지난 12일 알렉산드르(52)는 공장에서 용접 작업 중 원인 불명의 화재로 팔뚝에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 병원가자는 소리가 없었고, 간단하게 붕대를 감는 걸로 갈음했다. 그렇게 치료가 되기를 바랐지만, 부상당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알렉산드르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간단한 진료 후에 퇴원할 줄 알았던 그는 입원 다음날인 16일 사망했다. 


병원 측은 알렉산드르의 직접 사인을 패혈성 쇼크라고 했다. 그리곤 부검 없이 병사 처리해 버렸다. 고인은 현재 사망 후 곧바로 화장하여 본국으로 유해가 송환된 상태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산재 사망 사고를 감추기 위해 서둘러 화장 처리와 유해 송환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장 화재 사고와 그에 따른 부상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팔뚝에 화상으로 인한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도 병사 처리한 부분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한편 사측은 화재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고인의 부상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동포비자로 같이 있었던 동생은 “지병이라곤 전혀 없이 건강했던 사람이 병사라니 기가 막힌다. 화상으로 인한 감염이 있었는지, 응급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회사와 병원을 경찰이 조사해야 한다”며 반드시 원인 규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 외국인력 브로커가 사측 편의를 미끼로 유해 송환을 서둘렀는지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고, 사실관계를 은폐하려고만 하는 사장과 그 사실을 밝히겠다는 유족의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 싸움에서 호의를 갖고 도와줄 것처럼 다가갔던 브로커는 철저히 사업주 편이다. 사실상 브로커는 산재 신청을 요구한 유족에게 시체팔이라도 하겠다는 거냐며 벌써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토록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풍토에서는 진실을 알려는 유족을 파렴치하다고 몰아붙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과 그 유족에게 안전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사장의 진심어린 사과는 기대할 수조차 없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고 유족만 불쌍한 상황에서 진실을 알려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게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저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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