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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Sep 28. 2017

대를 이을 자손이 대체 뭐라고...

동서가 애를 낳자, 시부모님 눈길이 달라졌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한다. 결혼이주여성은 어떨까? 이들도 육아와 살림, 대를 잇고 억척스럽게 집안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적인 어르신들 틈바구니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가족 혹은 이웃들에 의한 의도하지 않은 상처가 어떻게 생기는지 살펴보고자 한다.-(2)


동서가 애를 낳았다. 시부모님 눈길이 예전 같지 않다

N은 자신을 사라 엄마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넘었지만 한국 국적을 따지 못한 그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속 편하게 사라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N은 추석 연휴 때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쉰다. 직장생활을 하며 이렇게 길게 쉬어 본 적은 처음이다. 여름휴가도 고작 사나흘이 대부분이었고, 이렇게 길지 않았다. N이 여태 국적을 따지 못한 이유는 아이를 낳던 달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귀화 시험을 몇 번 봤지만 계속 떨어졌다. 혼자 일하면서 사라를 키우느라 시험 공부할 여력이 없었던 탓도 있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큰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사별한지도 십 년이 넘는데 왜 재혼하지 않는지 종종 묻는다. 그러면서 주위에서는 자꾸 결혼을 부추긴다. N은 이제 겨우 서른을 조금 넘긴 젊은 나이다. 하지만 N은 딸아이를 낳았을 때 죽은 남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처음 젖을 먹이며 "아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울게"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었던 N이었다.


그런 N을 시부모는 기특해 했다.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고, 안부를 묻는 며느리가 대견하다며 어린 손녀에게는 제법 큰돈을 용돈으로 주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사실 N이 처음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던 건 아니었다. 남편이 죽자마자, 시댁에서는 얼마간의 목돈을 쥐어주며 귀국을 종용했었다. 그 중심에 남편의 누나이자 사라 고모인 형님이 있었다. 형님은 사라를 시부모에게 맡겨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형님은 남편이 없으면 불법체류자가 되는 거라며 N에게 귀국까지 3주간의 말미를 준다는 통보를 하고 사라를 데리고 사라지기도 했었다.  형님은 애타게 사라를 찾는 N에게 아이를 입양 보냈다면서 찾지 말라고 했었다. 그는 사라의 미래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상속권이 N에게 돌아가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사라를 되찾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지가 벌써 10년 전이다. 그 동안 시부모님과는 사이가 좋아졌다. 특별히 재작년에 남편 남동생이 N의 소개로 베트남 여자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시부모는 "사라 엄마가 우리 집 복덩이야"라고 했었다.


그런데 작년 추석을 앞두고 동서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서 시댁 식구들 눈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 입양 문제로 시비가 붙었던 형님은 N의 부아를 돋우기로 작심한 사람 같았다. 10년 전 일 때문에라도 미안해하는 게 마땅한 형님은 지금까지 국적 못 딴 것도 억울한데, 베트남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며 핀잔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했다.


"베트남 여자들은 애 낳고 국적만 따면 베트남 남자 만나서 딴 살림 차린다며. 그나저나 N은 혼자 애 키우려고 국적 안 따는 거야? 여태 국적 못 따고 뭐했어."


형님 말대로라면 동서는 베트남 남자를 만나 딴 살림 차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 말에 화를 내야 할 텐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동서는 멀뚱멀뚱 옆에서 눈치만 보며 둘의 심기를 살폈다. 어색함을 달래려던 시어머니는 동서가 살림을 잘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N에게 "명절 땐 좀 일찍 오든가. 명절이라고 음식 한 번 해 본 적이 없잖니"라는 말로 그동안 전혀 없던 타박으로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는 "아이고, 우리 집 기둥, 크는 거 봐라" 하며 손자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사라를 예뻐하긴 했지만, 손자를 대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N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아버지에게 손자는 가문을 이을 자식이지만, 사라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인연이었다. 시아지 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 모두, 심지어 동서까지 N은 이제 남이 돼도 좋을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대를 이을 자손이 대체 뭐라고...


지난 추석을 생각하면 N은 시댁에 가는 게 마음 편할 리 없다. 그래도 사라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르고 자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N은 불편해도 시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다만, 속상한 일만 있을 걸 뻔히 알면서 하루라도 먼저 가서 동서와 같이 음식을 장만할지, 추석 당일에만 인사를 드리고 올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딸아이를 위해 재혼도 하지 않고 억척스레 살아온 사라 엄마가 긴 추석 연휴가 마음 편치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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