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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Sep 28. 2017

시댁에서 추석 연휴 다 보내자는 남편

시부모님 사랑이 부담스럽다는 결혼이주여성 지연씨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스트레스 받는다고 한다. 결혼이주여성은 어떨까? 이들도 육아와 살림, 대를 잇고 억척스럽게 집안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적인 어르신들 틈바구니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가족 혹은 이웃들에 의한 의도하지 않은 상처가 어떻게 생기는지 살펴보고자 한다.-(1)

이 사람 누가 좀 말려 주세요!

지연씨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다.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지만, 시댁이 있는 시골에 가면 그냥 월남댁으로 불린다. 평생 8천평이 넘는 논농사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땀 흘렸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걸음마를 시작한 손녀와 며느리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시아버지는 그렇게 할아버지 티를 팍팍 낸다.

마흔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타향살이하던 막내아들이 같은 공장에서 만난 아가씨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시아버지는 마뜩치 않은 표정이었다. 외국인 며느리라고 시큰둥해하던 시아버지는 손녀가 생긴 이후로 입이 헤 벌어졌다. 달력에 빨간 날이 보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놀러 안 와?"라며 다그치기 일쑤다.

직장 때문에라도 살고 있는 곳에서 돌잔치를 하기 원했던 지연씨와 달리 남편은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서 해야 한다고 우겼다. 어쩔 수 없이 지연씨는  아이 돌을 맞아 시댁에 갔다가 힘든 이틀을 보냈다. 

농부 특유의 부지런함이 배여 있는 시부모님은 달리 일이 없어도 언제나 새벽 5시면 일어났다. 지연씨는 아이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고 잠시 눈을 붙이려고 할 때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뭔가 다듬는 소리를 들었다. 부엌에 가면 시어머니는 들어가 자라고 하실 게 뻔했다. 그래도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놔두고 부엌으로 가기 전에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요즘 한참 걸음을 배우는 아이는 손닿는 것마다 잡아당긴다. 엄마가 없는데 깨어나기라도 하면 사방이 지뢰밭이 될 게 뻔했다.

야속한 남편은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리 흔들어도 꿈쩍도 않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시부모님이 들을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남편은 한 번 잠이 들면 아이가 울든 말든 깨어나는 법이 없다. 시부모님은 막내아들에게 농사일을 시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8시 넘어서야 눈 비비며 일어나도 뭐라 하는 법이 없었다.

지연씨는 베트남 항구이자 공업도시인 베트남 하이퐁 출신이다. 부모님은 시내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농사일이라곤 구경조차 해 보지 않았던 지연씨에게 시댁은 모든 게 낯설고 서툰 일뿐이다. 하우스에서 뭔가 따라 해 보려고 해도 요령도 없고 힘이 딸려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실수만 안 해도 다행이다. 그런 지연씨에게 시아버지는 아이나 보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런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내심 며느리가 하우스에 들어가길 바란다는걸 모를만큼 눈치 없진 않다.

반면, 남편은 모든 게 어색하고 서먹서먹하기만 한 지연씨가 왜 시골 생활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부지런한 시부모님에 비해 고향에 가면 어린아이가 돼 버리는 남편에게 고향은 꿀맛 같은 휴식을 보장하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후로 상황은 좀 더 복잡해졌다. 특히, 시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술판이 벌어질 때면 지연씨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시아버지는 여자들이 부엌에서 안주를 차리는 동안 며느리 얼굴을 동네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보이고 싶어 '빨리 안 나온다'고 재촉한다. 며느리 자랑을 하며 우쭐해 하는 소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월남댁'이 어떻고 하는 소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이퐁이 베트남 북부라고 해도 어른들에겐 의미 없는 항변이다.

지연씨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입국하는 다른 결혼이주여성들과 달리 한국에서 연애 결혼했다. 동네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이 어떻다 하는 소리가 자신과 비교하며 칭찬하는 이야기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히 얼굴이 빨개지고 속상해진다. 그들은 어느 집 며느리가 국적 따더니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느니, 사람이 변했느니 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안주거리로 삼았다. 마치 모든 베트남 여자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중에 지연씨 들으라는 듯이 칭찬하는 소리가 맘 편하게 들릴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했다.

돌잔치 때도 벌어진 일은 여느 때와 똑같았다. 동네 어른들은 덕담 속에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외국인 며느리들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 지연씨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였지만, 그들은 그게 상처가 되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맘도 상하고 몸도 피곤한 이틀을 보내고 돌아오자, 아이는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연씨도 덩달아 감기에 걸려 며칠을 고생했다.

지난 일요일 지연씨는 추석 연휴 때문에 남편과 다퉜다. 이제 겨우 아이 콧물이 멈추었는데, 남편은 열흘 가까운 연휴를 부모님과 함께 보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말로는 연휴 때 하우스 일이 한창 바쁠 때라 그렇다고 했지만, 소가 웃을 일이었다. 남편은 하우스에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어디 가서 낚시하고 와서는 반찬값 해 왔다고 자랑할 사람이다. 그런 남편과 함께 시댁에 갔다가는 열흘 동안 아이를 안고 하우스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연씨는 오늘도 요구한다.

                                                                 "딱 이틀만 갔다 오자!"

지연씨 투쟁이 승리로 끝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막내아들 내외가 손녀와 함께 열흘 정도 묵었다 가기를 바라는 시부모님 말에 남편은 그저 순종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연씨를 위해 외쳐 본다. 연휴 내내 시댁에 있겠다는 "이 사람 누가 좀 말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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