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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Nov 09. 2017

그들은 왜 나를 부자로 보는 걸까?

비행기 표 보낼 테니 놀러 오라는 귀국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쉼터 대표라고 하면 돈 많은 자선 사업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그들로부터 남 속도 모르고 ''인도네시아에 언제 와요? 캄보디아로 놀러 오세요. 베트남으로 놀러 가요. 네팔에 같이 가요" 등등의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 중에는 간혹 비행기 표를 사겠다는 사람도 있다. 가깝게는 오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초청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그런 말이 그냥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진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인 헨리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다가 귀국한 후에 다시 대만으로 이주노동을 간 사람이다. 2주 후면 인도네시아에서 10헥타르나 되는 양어장을 운영하는 남자와 결혼한다. 남편 될 사람은 인도네시아 전통무술인 빤짜실랏Pencak Silat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있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다. 


“이번 겨울에 결혼해요. 와서 축하해 주세요. 비행기 표는 왕복으로 제가 보낼게요.”

“지난 번 결혼은 어떻게 된 건가?”

“결혼하고 대만에 왔더니 남편이 도망가 버렸어요. 이번엔 진짜 괜찮은 남자예요.”


한국에 온 지 12년이 되는 르비는 12월에 귀국한다. 아버지 나이를 핑계 대지만, 같이 살던 한국 여자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소나기는 피해 놓고 본다는 식으로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한국을 떠나는 셈이다. 그는 자신을 응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모양이다. 


“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셔서 곁에 있어드려야 해요. 그동안 신세졌는데 연말에 같이 가요. 돈은 걱정 마세요.”

“아버지 연세가?”

“70”

“70?우리 어머니는 80이신대, 70이면 젊다.”


5년 전 귀국한 와타는 요즘 캄보디아에서 사업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그런 사람이 자꾸 나를 부른다.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리나 보다. 캄보디아 말인 크메르어로는 인사도 할 줄 모르는데, 이런 난감함이 따로 없다. 


“제가 가구 공장하는 거 아시죠? 한 번 보러 오세요. 빨리요~”

“내가 가구공장 가면...일은 누가 하고...”

“일은 제가 하지요.”

“사장이 일하면 나도 일해야겠네. 혼자 놀든가.”


4년 10개월을 일하고 2층집을 올렸다는 몸신은 재입국 후 휴가만 기다리고 있다. 새집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한국에 온 탓이다. 사장에게는 근무한 지 1년이 되는 2월에는 한 달간 휴가를 간다고 미리 말해 놨다. 큰 돈 벌 욕심도 없는데, 휴가 안 보내주면 그만둘 생각이란다. 그러고 보니, 몸신은 자기 나라에서는 상당한 부동산을 갖고 있는 어엿한 중산층이다. 


“다음 휴가가 2월이에요. 그 때 저랑 같이 가요. 휴가 기간 동안 제가 책임질게요.”

“나 보고 한 달 휴가를 같이 가자고? 휴가는 갈 수 있는데, 그 동안 집에 쌀 떨어지면 어떡하라고.” 

"거짓말~"


비행기 표를 선물 받으며 여행할 만큼 베푼 것도 없는데, 호의를 베풀겠다니 고맙긴 하다. 내가 놀기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 신통방통하면서도 좀 섭섭하다. 비행기 표를 사 준다고 해도 따라나설 형편이 못 된다. 쉼터 운영하느라 숨 돌릴 여유조차 없다. 숨 넘어갈 정도로 헉헉 대는 내가 이주노동자들에게 부자로 보인다니 이상할 따름이다. 나를 초청하는 이주노동자들이말로 부자다. 마음만 부자가 아니라 진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부자 말이다. 


나처럼 NGO활동만 하다 반백이 된 사람은 다 때려  치우고 시골에 가서 품일이라도 하며 산다면 모를까. 놀러 오라는 말을 호의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하루 빨리 쉼터 없는 세상이 오든가, 내가 때려치우든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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