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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Nov 30. 2017

살아 줘서 고맙다

내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

2+9, 헨니는 11년을 이주노동자로 살았다. 한국에서 2년, 타이완에서 9년을 공장노동자와 간병인으로 살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었다.


2003년 9월 19일, 헨니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수술을 받았었다. 갑자기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로 입원했던 헨니가 수술 받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산업연수생으로 가리봉동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헨니가 구토하며 쓰러지자, 현장 반장은 며칠 계속된 야근 탓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때가 저녁 퇴근 무렵이었다. 


입원 수속할 때 돌아갈 길이 바쁜 반장은 의사에게 “원래 빈혈이 있던 사람이에요. 요 며칠 야근이 많았는데……”라는 말을 했다. 그 병원은 산업연수생들이 많이 찾는 병원으로 반장과 의사는 구면이었다. 반장의 말에 따라 병원에서는 수액을 주사하며 잠시 쉬면 될 거라고 했다. 


수액만 맞고 퇴원할 생각이었던 헨니는 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자,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했다. 기운이 없고 복부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 헨니가 호소하는 증상을 전달했다. 의사는 “생리 중에 빈혈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듯이 반응했다. 얼마 전에 헨니가 임신했다며 자랑했던 걸 기억한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생리요? 얼마 전에 임신했다고 들었었는데…….” 더 놀란 건 내가 아니라 의사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가 재진단한 결과 배에 물이 고였고, 골반에 염증이 있었다. 이어 내시경 검사 결과 배에 피가 고여 있고, ‘자궁 외 임신’이라는 진단이 나와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입원 이틀만이었다. 난관 파열로 인한 출혈이었는데, 병원 측은 공장 사람 말만 듣고 생리 출혈로 치부해 버린 탓에 상태가 악화돼 있었다. 배에 피가 고여 있어 패혈증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지만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의사는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조금만 늦게 알렸어도 수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헨니의 남편 아리스는 한국에 온 지 7년째로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러나 그는 공장에서 일하느라 병원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몰라서 아내를 도울 수가 없었다. 사실, 둘이 함께 귀국한 후에 한 짓을 살펴보면, 애초부터 도울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리스는 귀국하자마자 헨니가 한국에서 모아뒀던 적금과 한국에 가기 전 택시운전을 하며 모아뒀던 돈을 탈탈 털어 다른 여자와 줄행랑을 쳤다. 


인도네시아 스마랑 최초의 여자 택시 기사였다는 헨니는 그 후에 지역경찰관으로 일하는 학교 선배와 결혼했다가 헤어졌다. 결혼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헨니는 타이완으로 떠났다. 


헨니는 14년 전 일을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해 온다. 오늘 오후 2시에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고 연락이 왔다. 귀국 후에 동네에서 상당한 규모의 양어장을 운영하는 전직 빤짝실랏 우승권자와 결혼할 계획이라고 했다. 빤짝실랏은 우리나라 태권도와 비슷한 인도네시아 전통무술이다. 듬직한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14년 전 헨니가 수술 받은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그 날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한 사람의 생명을 받았으니 하는 말이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다. 살아 줘서 고맙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그나저나 결혼식에 초대한다는데 어쩌나~화폐가 딸린다 ㅍ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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