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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Nov 24. 2017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찾아온다

떠난 자리가 아름답고, 감사를 전하며 누군가를 찾는 사람이고 싶다.

하얀 눈이 내린 날 아침에 어린아이처럼 엉금엉금 차를 몰며 동심이 사라졌음을 슬퍼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두 달 넘게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살던 사람이 직장을 찾아 떠났다. 아무 말 없이. 구직 유효 기간 만료가 가까워 혹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까 봐 마음 졸이며 쉼터에서 생활하다 직장을 찾은 기쁨 때문이었을까. 급하게 떠난 흔적이 역력했다. 


방에는 까만 플라스틱 봉지에 잔뜩 담긴 쓰레기가 그대로 있고, 방바닥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진 머리카락들이 먼지에 엉켜 마냥 좋다고 뒹굴었다. 탁자 위에는 무슨 약인지 오랫동안 복용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약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외국생활하며 갑작스런 실직으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그가 복용했던 약들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있는 걸로 봐서 본국에서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주방엔 겨우 묶을 수 있을 정도로 음식물 쓰레기가 봉투 가득 담겨 있는 걸로 봐서 어제 밤에도 떠날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눈 내리는 밤에 밖에 나가는 걸 엄두도 못 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향신료 향이 짙게 밴 음식이 냄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침은 먹고 갔는지 의심스럽다. 간다고 살짝 귀띔이라도 하고 갔으면 좋았을 걸. 하필이면 눈이 잔뜩 내린 날 떠나서 차마 인사도 못할 만큼 숫기 없는 젊은이가 직장에서는 입이라도 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두 달 정도 한국어교육을 받았던 사람이 먼 지역으로 근무처를 옮긴다고 인사를 왔다. 3년 전에 공부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다. 그가 얼마간 공부했었는지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까마득하다. 그런 그가 그간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했었다며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찾아온다. 떠난 자리가 아름답고, 감사를 전하며 누군가를 찾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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