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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Nov 21. 2017

조건 내걸지 않는 결혼이 어디 있으랴

국제결혼을 매매혼이라고 비난하면 안 되는 이유

EBS 다문화고부열전이 논란인 모양이다. 결혼 전 조건을 지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지나치게 시어머니의 시각을 드러내서 지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로부터 관련 이야기를 듣고 방송과 댓글들을 살짝 살펴보았다.


댓글들 중에는 ‘미모의 며느리’를 강조하는 글들이 많았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지를 보내는 데도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는구나 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호감을 살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성이 아니라면 남편이나 시댁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도 좋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송에서 나온 ‘조건부 결혼’과 같은 논란이 일 때면 다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제결혼은 매매혼이라며 비난한다. 나는 그런 비난이 도를 넘었다고 본다.


방송에서처럼 사랑 없이 결혼한 사실이 부각되면 국제결혼은 매매혼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설령 그것이 편견이라 해도 어떤 조건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은 부정적인 인식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EBS 고부열전이 논란의 중심에 선 사실은 유감스럽다.


실질적으로 국제결혼 중개업자들 중에는 결혼생활이 아니라 한국 입국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입국 후 이혼하더라도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 방법으로 결혼 전 제시했던 ‘조건 불이행’을 들라고 한다. 그렇게 하여 상대방 귀책에 의한 이혼으로 몰고 가면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든 국제결혼을 매매혼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은 ‘그래서 다문화를 반대한다’고 말한다. 사실 결혼할 때 조건을 따지는 것과 조건부 결혼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조건을 따진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퇴짜를 놓을 수 있다. 결혼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반응하고, 주도권을 내가 쥐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한편, 조건을 내거는 것은 상대방의 태도에 달린 문제다. 상대방이 내 조건을 수락하면 결혼하겠다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주체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전적으로 상대방에 달렸다는 점에서 객체일 수밖에 없고, 상당히 수동적이다. 그와 반대로 이혼은 조건이 이행되지 않는 순간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면에서 내가 다시 주체가 된다.


결혼 당사자가 객체가 되는 일은 시작부터 불행의 씨앗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 객체가 주체가 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주체가 된다고 불행 끝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이고, 누군가에게는 불행이다. 국제결혼은 객체였던 대상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행 끝 더 큰 불행 시작이 되기 쉽다. 이처럼 결혼이라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건을 따지지 않는 결혼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맞다. 결혼할 때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이 좋아 결혼한다면 사랑에 눈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사랑을 꿈꾼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사랑이 있냐고 할지 모른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운 법이다.


그러나 결혼 전 조건을 ‘약속’이라는 말로 완화해 보면 세상의 모든 부부는 약속을 하고 시작한다. 조건을 따지고 주체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마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조건부 결혼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 국제결혼한 사람들이 조건부 결혼을 했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그들의 선택은 나름 합리성을 띠고 있었고, 주체적 선택이었을 수 있다.


결혼하면서 상대방에게 거는 기대를 조건이라고 매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결혼은 ‘부모를 떠나’ 일가를 이루는 일이다. 결혼하고서도 부모에게 의지하고 살 거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결혼했다면 부모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부모를 봉양할 때가 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부모는 부부 어느 한 쪽을 말하지 않는다. 양가 부모 모두를 성심껏 모실 각오가 있어야 한다.


내가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말해도 좋다. 국제결혼을 하고 지지고 볶고, 복장 터지면서도 깨알 쏟아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등 오만가지 가족을 보아왔다. 국제결혼도 결혼의 한 모습일 뿐이다. 지나치게 미화할 필요도 없고, 의심의 눈길을 보낼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잘 살라고 격려 정도는 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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