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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Nov 02. 2018

미래를 위한 선택이 불행이 될 줄이야

춤바람난 이주노동자 남편

누군가와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쉼터에서 한 달 넘게 생활했던 칭이 일자리를 찾아가서 잘 지내나 싶었는데, 페이스북에 소주병을 찍어놓고 눈물 뚝뚝 흘리는 이모티콘을 올려놓은 게 눈에 띄었다. 칭이 자국어로 올린 글을 번역해 보니 ‘남편 나쁜’이라고 나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칭 역시 곧바로 문자를 보내왔다. 


“무슨 일 있어요?”

“상추 일해요”


실직한 이주노동자가 쉼터에 있을 때 언어가 다른 사람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저 일자리를 찾았는지 묻는 정도다. 칭은 내가 늘 묻던 말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며칠 뒤 칭이 왜 소주를 병째 마시고 우는지 알 수 있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짧은 치마를 입고 노래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뒤에서 껴안고 치마를 들치며 더듬는 모습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칭은 그 영상 위에 “남편이....”라고 적고, 이번에도 눈물짓는 이모티콘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칭은 한국에 온 지 칠 년째다. 아이가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아이를 떼놓고 떠날 정도로 모진 엄마 소리를 들었지만, 이주노동은 인생을 바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농업 이주노동자로 4년 10개월을 일하고 성실 근로자로 재입국했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을 때마다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남편에게 보냈다. 그 돈으로 밭도 사고, 집도 지어서 미래를 계획하기를 바랐지만, 남편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술과 여자였다. 그동안 번 돈을 흥청망청 다 쓴 곳은 여자가 있는 술집과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였다. 그 현장을 술집에 있던 누군가가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칭은 설마 하던 일을 영상으로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무능한 남편인 건 알았지만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같이 한국에 온 동료들이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하는 모습을 한두 번 봐 온 게 아니지만, 그건 남들 이야기로만 치부했었다. 1년을 같이 일했던 치옴난, 무니, 소킴 모두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이혼했다. 셋이 자식들을 할머니 손에 맡기고, 번 돈을 다 보내지 않고 귀국할 때 들고 갈 거라고 할 때도 칭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일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내가 번 돈과 함께 마음마저 갖다 바쳐버려서 더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의미가 없었다. 남편은 칭이 어떻게 일해서 번 돈인지 모를 만큼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달에 고작 이틀을 쉬면서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예사였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놀러 갈 때도 귀국해서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살 꿈만 꾸며 비닐하우스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일했다. 미래를 위해서였다. 


미래를 위한 선택이 불행이 될 줄 알았다면 이주노동을 떠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남편이 춤바람났지만 참아 볼까도 생각했지만, 7년 동안 그래왔을 거라는 생각에 세 친구와 같은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꿨던 칭은 다시 한번 모진 선택을 하기로 했다.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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