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ince ko Mar 06. 2019

역설

도살, 그 앞의 생명력

초봄

경칩을 앞둔 계곡은 목말라 있었다

동글동글 모난 구석 없이 엉겨붙은 돌멩이들은

허연 거품 물고 내닫던 지난 장마를 닮았는지

허옇게 튼 주둥이를 틀어 

목마름을 호소하고

돌멩이가 깔고 앉은 이끼와 잡목들은

봄으로 치닫고자 들썩이며 돌멩이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겨우내 눌은 때 벗겨볼 심산인지 머리끝 치켜든 개나리 바둥거림도 

아직은 봄기운이 버거운 지 샛노란 

경칩 앞둔 날

머~얼리

개똥이네 똥돼지 울음 소리 들렸다


거름내고 나면 개똥이 누이 시집보낼 돈 마련한다고 했던 

개똥 어멍 말이 새록허니 떠오르고

곧 망자(亡者)가 될 개똥이네 똥돼지의 쩌렁한 생명력이 

마을에서 계곡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계곡을 내려오던 길손은

선득함에

하늘을 쳐다보며

생(生)은 이다지도 죽음 앞에 강렬할 수 있는가 물었다


그 날,

제주도 성산포 앞바당 식산봉 계곡 아래

제대로 그슬리지 못한 돼지털 모양의 잡목 가지들은

더욱 바지런떨며 봄을 맞고 있었고

내 생의 봄은 언제 오는가고 한숨 내짓지 말자 다짐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방인 형제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