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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ug 20. 2019

'떼돈' 아닌 '때돈' 벌었던 뻥튀기 아저씨

뻥튀기, 추억을 먹다

뻥이오!


남자는 뻥을 치기 전에 길게 내빼는 소리로

아이들에게 긴장을 요구했다

잠시 후

귀를 막고 총기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저마다 잔뜩 때낀 손을 내밀면

의기양양해진 남자는

줄을 설 것을 주문하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폭총 놀이도

구슬치기도

아이들 관심을 벗어났다

침을 꼴깍 삼키고

숨을 죽이고

총총한 눈으로

남자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집중했다

그 정성이면 박사도 몇 개는 문제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핀잔은

귓전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옥수수는 달콤했고

보리는 고소했고

쌀은 살살 녹았다


이제

그 맛은 추억으로 남았다


올해는 백중이 좀 일찍 지났는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지없이 온 동네 아이들과 아낙들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던 남자가 있었다. 곡물 증대업자! 흔한 말로 뻥튀기를 생업으로 하던 그는 킹카는 아닐지라도 '뻥' 하나만큼은 킹카도 울고 갈만큼 기가 막혔다.


그가 뻥을 칠 때마다 수령 백년도 더 된 팽나무 아래에서 구슬치기하고 폭총 갖고 총싸움하던 녀석들이 쪼르르 달려들어 때가 잔뜩 낀 손을 내밀곤 했다. 폭총은 대나무 줄기를 잘라 그 속에 팽나무나 송악 열매를 밀어 넣어 공기를 압축하면 ‘팡’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처럼 튕겨 나가도록 만든 장난감이었다. 등짝 피부가 벗겨지고 목덜미가 시커멓게 될 정도로 여름 내내 놀이에 열중하던 아이들의 관심을 뺏는 일은 시골에서 흔치 않았다. 곡물 증대업자는 한 번 ‘뻥’을 칠 때마다 마치 자기 곡물로 만든 것인 냥 아이들에게 한 줌씩 인심을 썼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 눈은 총총, 그야말로 총기가 가득해지곤 했다.


그 중에 곡물 증대업자가 나눠 준 게 성이 차지 않은 녀석들은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뭔가 한 보따리씩 남자 앞에 던져 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얼마인가 요구하기도 했지만, 돈이 없는 경우엔 보따리에서 몇 주먹이나 골물용 바가지인 솔박으로 내용물을 조금 덜어냈다.


동네 꼬마들이 가져온 보따리엔 옥수수가 들어있기도 했고, 보리나 쌀이 들어있기도 했다. 남자는 그것들을 뚜껑을 꼭꼭 닫은 검은 솥통에 넣고 돌리고 또 돌렸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무엇을 집어넣었느냐에 따라 달랐다. 옥수수는 팝콘이 울고 갈 정도로 달달했고, 보리는 조리퐁에 비교가 안될 만큼 고소했으며, 쌀은 솜사탕에 버금갈 만큼 살살 녹았다.


고향 친구 말로는 요즘은 오일장에서 그 남자를 볼 수 있다는 걸로 봐서, 여름마다 장이 서듯 팽나무 아래를 찾아와 ‘떼돈’ 아닌 아이들 손때 묻은 ‘때돈’을 벌었던 곡물 증대업자는 여태 번듯한 가게나 공장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요즘 뻥튀기는 아이들 가슴을 뛰게 하지도 모으지도 못하고, 맛도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래도 집어 드는 건 추억을 먹고 싶은 탓이리라.


(사진: 제주도, 하늘 아래 첫 햇살이 비친다는 오조(吾照)리 식산봉, 바람이 많이 분다 해서 바오름이라고도 하고, 오름 정상에 왜구를 토벌했던 조방장 장군은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바위 오름(바오름)이라고도 한다. 그 오름 앞에는 양어장이, 뒤로는 일출봉이 있다. 오조리 마을 중심엔 수백년 된 팽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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