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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ug 21. 2019

말이 뿌리내리기까지

우리말 선생님, 일상 속 일제 잔재 뿌리뽑기


뺀또 아닌 도시락

다꽝 말고 단무지

이루꾸 아닌 멸치

와리바시 말고 젓가락


초등학교 3학년 담임

고계숙 선생님은

점심시간이면

나랏말씀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학기말이 되기 전에

멸치와 단무지 반찬이 든 도시락을

젓가락으로 먹었다


어른들은

오라이 오라이하며

쉬이 바뀌지 않았지만

섬 아이들은

일제가 남긴 말을 하지 않고도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노는 시간엔

구슬치기로 다마치기를 대신했다


섬 아이들은

어쩌다

명절에 쥔 몇 푼 동전으로

어른들 몰래

'어찌니쌈'

쌈치기하며

근본없는 말을 쓸 때면

죄짓는 줄 알았다


일제가 남긴 말을 뿌리 뽑기 위해

아이들 점심때마다

잠시 동작을 멈추게 했던

고계숙 선생은

바른말을 뿌리내리게 한

손꼽히는 은사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우리 어머니가 이름을 기억하는 천재성에 늘 감탄한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를 찾아오지는 않더라도 내가 몇 반이라는 것과 선생님 이름을 까먹은 적이 없으시다. 그것도 그해 선생님 이름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12년 동안 모든 선생님 이름을 그대로 외우셨고, 대학 들어가서까지 선생님들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반면 나는 우리 아이들 반과 선생님 이름을 학기 초마다 확인해 놓고도 금세 까먹는다. 


심지어 요즘은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이름마저 까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들 이름을 떠올려 보기로.


초1 박산*, 축구부 담당 선생님으로 학교에서는 실세였는데 수업 시간에 술 냄새를 풍길 때가 많았다. 아이들 시험 채점을 엉터리로 할 때가 많았다. 전교 1~2등을 다투던 우리 작은 누나는 채점을 다시 해 주며 선생님이 틀렸다고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초2 현대*, 정년을 앞둔 선생님이셨는데, 수업은 늘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읽게 하는 것으로 끝냈다. 교수법을 안 배우셨던 듯!


초3 고계*, 당시 선생님은 교육대를 막 졸업하고 부임 첫해에 우리 반을 맡으셨다.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공을 던지면 제일 멀리 던졌고, 멀리 뛰기도 그랬다. 도시락을 우리와 같이 드시기도 하셨는데 반찬은 주로 계란이었다. 


초4 ***, 은근 나쁜 짓만 하는 선생이었다. 5학년 장*장 선생과 학교 사육장에서 토끼나 닭을 몰래 잡아먹곤 했다. 입을 쩍 벌리고 오른손으로 턱을 주무르는 습관이 있었다. 분필을 칠판에서 한 번도 떼지 않고 순식간에 새나 물고기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었다. 


초5 ??? 농구부 여학생들을 편애했는데 그 태도가 썩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 말고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초6 정상*, 촌지왕. 노래를 잘했던 선생님이신데, 촌지를 엄청 밝혔다. 졸업할 때 양복점집 아이에게 상장을 몰아줘 졸업식장에서조차 아이들 원상이 자자했다. 선생님 딸은 내 사촌 동생과 친구였는데, 그때는 그랬는지 그 아이는 아빠가 촌지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누가 얼마를 줬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중1 고*숙, 영어 선생님. 입만 열면 그해 시작한 한국 프로야구를 일본 프로 야구와 비교하면서 수준 차 어쩌고 했던 교감 선생님 아들과 결혼했다. 교회학교 중고등부장 선생님이라 일주일 내내 선생님과 함께 할 때가 많았는데 선생님은 영어 공부보다 톨스토이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중2 김*중, 행정(기술)고시를 패스하고도 교직을 택했고, 우리학교가 첫 부임지였다. 럭비 선수 출신이라 허벅지가 아이들 허리보다 굵었다. 형님 같았던 선생님은 공평무사했었는데 우리를 마지막으로 하고 교직을 떠났다.  


중3 김**, 국어 선생님으로 해병특수수색대 출신이다. 학교를 빼먹는 아이들 잡으러 다닐 때가 많았다. 선생님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아이를 찾으러 갈 때면 학교 빼먹은 친구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고1 윤영*, 영어 선생님. 육지에서 오셨는데 팝송, 특히 Green Green Grass of home과  Yesterday를 좋아하셨다. 방학에 선생님께 영어편지 쓰기를 숙제로 내주셨고, 학기말에는 반 모든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주셨었다. 나는 나무로 만든 고급스런 책상용 전등을 받아 대학 입학 때까지 썼다. 


고2 김동인, 이름으로는 국어 선생님이셔야 했던 영어 선생님. Pencil은 펜슬이 아니라 연필임을 시험을 통해 가르치셨다. 대학에서 가르치시기도 하셨었는데 지금까지 제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피신다. 


고3 안상*. 국어 선생님. 대학 진학 때 내가 전형적인 문과라는 걸 아셨을 텐데, 이과를 선택했는데도 선뜻 허락해 주셨던 선생님. 만일 그때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스승의날 #선생님 #일제잔재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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