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게도 위로가 필요해

제주 갈치와 기후 위기

by Prince ko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온 큰 누님이 아직도 선장으로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말을 전했다。요즘 갈치잡이가 예전같지 않다면 한탄을 하더란다。


“옛날엔 바다에 뜨기만 해도 한 상자였는데 요즘은 그 그림자도 귀하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성산 앞바당에서 동네 삼촌이 잡아온 갈치의 위용이 아직도 선명하다. 삼촌의 두 손에 들려 있던 갈치는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려도 꼬리는 땅에 닿았고, 은빛 비늘은 햇살에 반짝이며 꼬마로 하여금 자연스레 손을 뻗게 했다. 살집도 통통한 그 갈치는 저녁 밥상에 올라 제주의 풍요로움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지금, 제주 바다는 예전과 달라졌다. 한 마리면 온 가족이 배불리 먹던 갈치는 사라졌다. 오늘날 성산 앞바당에서 만나는 갈치는 키도, 굵기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어릴 적 보았던 성산포의 빛나는 갈치는 우리 동네에선 먹지도 않던 미꾸라지만큼 작아졌다. 그 작은 갈치를 볼 때마다 푸른 바다에 남은 아득한 기억들을 떠올리고, 잃어버린 것을 애써 헤아려본다.


어쩌면 이 모든 변화는 갈치가 사는 바다의 울음일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고향의 푸른 바다와 맞닿아 있다. 해수면 온도가 오르고, 먹이 사슬이 흐트러지면서 바다를 헤집던 큰 갈치는 점점 희귀해졌다. 갈치뿐 아니라, 바다와 함께 자란 모든 생명이 그 변화를 겪고 있다.


잔디밭이던 우리 집 마당에서, 말복 저녁에 바다 냄새를 맡으며 어른들이 갈치를 해체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아련하다. “옛날엔 갈치가 정말 크고 많았지”라는 말을 그저 꼰대 소리로 치부하는 아이들은 모를 수 있다.


여름방학에 동네 삼촌들을 따라 멸치잡이 배를 타면, 수평선 너머에서 몰려온 멸치 떼가 바닷속 은빛 폭포처럼 흩어지고, 그 뒤를 갈치들이 번쩍이며 좇아갔다. 힘차게 솟구치는 갈치의 은빛 등줄기 위로, 더 멀리서 좀생이(돌고래를 일컫는 제주어)들이 미끄러지듯 파도를 가르며 따라가곤 했다. 바다는 그들의 무대였고, 우리는 그 무대의 관객이었다.


선상 갑판에 서면, 바람과 파도 소리 사이로 숨 고르는 돌고래의 숨소리가 들렸고, 갈치가 물결을 가르며 달려오는 장관은 제주 바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축제였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니라 바다의 일부였던 마린보이였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니라 바다의 일부였던 마린보이, 진짜 ‘고기 복’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 풍경은 점점 기억 속으로만 밀려나고 있다. 바다 먹이사슬의 균형이 무너지고, 멸치 떼는 옛날만큼 물밀 듯 오지 않는다. 갈치의 체형도, 좀생이의 무리도 점점 작아지고 듬성해졌다. 기후와 인간의 발자국이 바다 깊은 곳까지 스며들면서, 바다가 준비하던 잔치는 서서히 막을 내리는 듯하다


갈치가 작고, 사라지는 만큼, 제주 바다의 추억은 더 소중해진다. 오늘은 추억을 잃어가는 사람만 아니라, 바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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