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외국인이주노동자 강제추방과 일제단속을 보며
잡지 마라
나는 간다
만신창된 몸 쉴 수 있는 땅으로
잡지 마라
나는 간다
가슴에 한 맺힌 엄마 아빠 품에서
피눈물 흘릴 수 있는 땅으로
잡지 마라
나는 간다
누른밥 한 숟가락
단 맛으로 떠먹일 새끼 있는 땅으로
잡지 마라
나는 간다
내 꿈(Korean Dream)보다 아름다운 食口들
입구멍이 와글거려도
고소한 땅으로
잡지 마라
나는 간다
내쫓지 않아도 나는 간다
꿈보다 아름다운 내 강산으로
잡지 마라
나는 간다
**2003년, 거리마다 ‘출입국 단속반’의 발소리가 쿵쾅거렸다. 새벽시장, 공장공장, 허름한 숙소, 골목 점방에서 미등록자들은 숨을 죽였다. 그들은 이 땅에서 ‘노동자’였지만, 법의 이름 아래선 ‘불법체류자’로 불렸다. 그 두 단어 사이의 간극—바로 그 틈새에서 나는 이 시를 썼다.
‘부대낀다’는 말은 사람의 몸이 부딪히는 살의 감촉이기도 하고, 제도와 인간이 충돌하는 고통의 소리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값싼 노동을 원했지만, 그 노동의 주체를 시민으로 품을 준비는 없었다. 새벽마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던 손들이, 이제는 포승줄에 묶여 외국인보호소나 공항으로 내몰렸다. 그 부대낌의 현장에서 나는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 시는 ‘추방’의 시간에 들끓는 ‘떠남의 언어’다. 누가 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나는 간다”고 말하는 존재들의 마지막 자기선언이다. “잡지 마라”는 외침 속에는 분노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슬픔이, 하지만 그 안에 꺼지지 않는 자존의 불씨가 있다. 그들은 단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떠난다.
이 시를 쓰며 생각했다. Korean Dream이라 불렸던 약속은 누구의 꿈이었는가. 민주화 이후 한국경제 성장에는 이주노동자의 헌신이 있었다. 그들의 피, 땀, 그리고 체류자격증이 없는 손들이 이 나라 경제를 지탱해왔다.
“잡지 마라, 나는 간다.”
이 말은 도망이 아니라 선언이다. 내쫓김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는 인간의 품격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 존엄을 잊지 않기 위해 간다고 선언할 수 있는 존재가 이주노동자다.
살맛나는 세상은 살갑게 부대끼며 사는 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