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토요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반포에서 출발시간은 9시이지만 손흥민의 토트넘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축구를 보고 라면 하나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업힐 라이딩은 꽤 많은 체력이 소모되므로 영양 성취를 잘해야 한다.
오후에 있는 걷기 모임까지 참여하기 위해 자전거 복장이 아닌 일반 운동복장으로 자전거를 탔다. 장거리 스피드 라이딩이 아나라 업힐 위주의 짧은 구간이기 때문에 복장은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침 7시 집에서 반포까지 편한 라이딩을 시작했다. 얼마를 갔을까? 몸이 풀려 속도를 내려고 기어를 바꾸는 순간 전자식 기어가 바뀌지 않았다.
'어? 이게 왜 그러지? 지난주에 충전했는데?'
보통 전자식 기어는 한번 충전에 1000킬로를 달릴 수 있다. 지난주 여주 라이딩 전에 충전을 했으므로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방전이 된 것 같았다. 추운 날 아파트 베란다에 자전거를 놔두면 전자식 기어가 방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기어를 충전할 시간이 없어 30만 원대 입문형 로드 자전거를 타야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반포까지 자전거를 타기에는 촉박하여 지하철을 타고 갔다. 금호역에서 내려 친구들과 조인할 장소로 이동했다.
그 장소까지 가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한남동 고급 주택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언덕에 있었다. 30만 원대 로드 자전거라 특히 언덕을 오를 때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런 언덕 위에는 고급 멘션과 빌라들이 있었다.
'이런 곳에 비싼 집들이 있구나! 언덕 위에 있어서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기도 힘들겠네! 이렇게 위에서 밑을 바라보는구나!'
자전거 기어가 방전되는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산다는 한남동 주택 단지를 아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드디어 친구들과의 조인 장소에 도착한 나는 준비한 견과류와 포도당 사탐을 먹었다. 업힐 전에 영양 섭취는 필수이다. 드디어 7명의 친구들이 멀리서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들은 나를 본 후, 멈추지 않고 바로 달렸다. 나는 30만 원대 로드를 타고 그들의 후미를 쫓았다. 처음부터 낙오다. 30만 원대 자전거로는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남산 업힐 전의 잠깐 쉬는 곳에서 친구들이 기다려줬다.
드디어 본격적인 남한 업힐 시작이다.
남산 업힐은 이번이 2번째다. 예전에는 300만 원대 로드 자전거로 성공했고, 이번에는 30만 원대 로드 자전거로 시도다.
'이게 뭐야? 경사가 이렇게 낮았나?'
철원에서 너무 끔찍하고 경사도 높은 업힐을 경험해서 그런지 남산은 그냥 애들 장난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를 끌바를 피하기 위해 체력을 아끼며 올라갔다. 결국 정상에 오를 때 8명 중에 7등으로 올랐다. 물론 꼴찌 한 친구가 나보다 더 자린이라 자랑할 것은 못돼지만 30만 원대 로드로도 남산은 가뿐하게 오를만했다.
정상에 도착해서 활짝 웃는 모습이다. 클릿슈즈 없이도 할만했다. 정상에 오면 펜다곰과 사진을 찍어야 한다.
정상에서 커피를 한잔 하며 카페인을 보충하고 다시 포도당 사탕을 먹었다. 카페인은 순간적인 운동 능력을 올려준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바로 북악으로 이동했다. 내리막은 꽤 위험했다. 중간에 이미 사고가 나서 앰뷸런스가 환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남산에서 급경사 내리막은 30만 원대 로드 자전거의 림 브레이크로 제동 하기에 만만치 않았다. 300만 원대 자전거는 디스크 브레이크라 살짝만 잡아도 되는데, 림 브레이크는 꽉 잡아도 자전거가 밀려 내려갔다. 나는 손 잡이를 양 머리 아래를 잡고 허리를 숙여서 브레이크를 잡았다. 즉, 속도를 낼 때 쓰는 자세를 취했다. 보통은 손잡이 위를 잡는다. 그러나 속도를 낼 때는 바람의 저항을 없애기 위해 사이클 선수같이 손잡이 밑에 양머리 뿔 같이 생긴 부분을 잡는다.
그 부위를 잡으니 림 브레이크를 강하게 제동 할 수 있었다. 그 대신 자세가 너무 낮아 전복의 위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제동이 우선이라 선수들 자세를 해서 남산을 내려왔다.
드디어 공도다. 이곳은 을지로인지 종로인지 잘 모르겠다. 광화문 근처인 듯도 하다. 항상 시위대가 있고 경찰이 있다. 인도는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차도로 빠르게 달렸다.
한참을 달려 북악으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우리같이 자전거를 타는 무리들과 자동차만 있었다.
유튜브로만 보던 북악이라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친구들이 북악 스카이 웨이 진입하기 전 편의점에서 보급을 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과 카페인 음료, 포도당 사탕등을 먹으며 영양을 섭취했고 북악을 오르기 시작했다. 북악은 남산과 비교했을 때 거리만 더 길고 경사도는 비슷했다. 이미 철원에서 단련된 나는 북악도 너무 쉽게 느껴졌다. 30만 원대 로드로 거침없이 올랐다. 단, 거리를 몰라 마지막 힘을 아끼며 페이스 조절을 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 중 업힐의 왕들이 다시 내려와 뒤의 후미 주자들을 응원해 줬다. 그 친구들은 북악을 올라도 체력이 남는 친구들이다. 다시 내려와서 후미 4명의 그룹을 응원하며 같이 올랐다.
난, 여기서 승부를 걸었다. 정상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고 모든 체력을 쏟아서 전속력으로 올라갔다. 북악은 5등으로 올랐다. 사실 북악도 별것 없었다. 이 정도 경사는 경사라고 하기에도 우스웠다. 역시 더 빡센 코스를 달려보니 그것보다 쉬운 코스는 다 껌같이 느껴진다.
30만 원대 로드로도 남산, 북악 정도는 가볍게 성공이다.
오늘 우리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한 자린이 친구와 사진을 찍었다. 이 친구도 남산과 북악 업힐에 성공했다. 이런 그룹 라이딩을 친구들과 하면 묘한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을 설명하기 힘든데 다른 모임과는 다른 느낌이다. 만약 원시시대에 살았다면 함께 사냥에 성공해서 기쁨을 만끽하는 느낌이다. 사냥하는 과정이 힘들수록 전우애는 더욱 굳세게 싹튼다.
북악에서 고대까지는 다운힐과 업힐이 적당히 있는 코스다. 우리는 고대에 와서 갈비찜을 먹었다. 가격에 비해 맛이 아쉬웠다.
밥을 먹으며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다. 겉도는 얘기가 아닌 깊은 얘기들을 나눈다. 왜냐하면 우리는 힘든 사냥을 하고 온 동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친구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50대 가장의 무게는 무겁다. 그리고 내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의 삶이 화려해 보여도 막상 얘기를 나누면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고 힘듦이 있다. 친구들을 만날수록 내 삶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