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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과 상상 Oct 29. 2023

철학자와 함께 걷다!

대학 동기들이 함께하는 걷기 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운영자는 항상 콘셉트 있는 마실을 계획한다. 미리 코스를 탐방하고 어울리는 이벤트를 만든다. 지난번 걷기 모임에는 북악 하늘길 산책과 옛돌 박물관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학 동기가 옛돌 박물관 관장이라고 한다. 관장이 직접 박물관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너무 멋진 프로그램이다. 자녀를 데리고 와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실제 자녀를 데리고 오는 동기들도 있다. 


11월은 만추의 남한산성 걷기와 한국사 강사를 초빙해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남한 산성에서 병자호란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한국사 강사가 한다면 매우 멋질 것이다. 체험과 강의가 함께하는 콘셉트이다. 아마 한국사 강사는 동기들 중 전공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 자녀들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하지만 아이들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서 그런지 따라오려 하지를 않는다. 


이번에 내가 참여한 걷기 마실은 고려대학교 교내 산책과 철학과 교수의 칸트 철학 강연이다. 철학과 교수도 동기인데 이 친구는 힘들게 독일 유학을 갔다 왔다고 한다. 독일은 대학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기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것도 매우 힘들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중권도 독일 유학을 갔다가 박사 학위를 못 받았다고 하지 않는가!


고려대학교는 꽤 넓어서 교내와 주변만 산책해도 거의 3시간이 걸린다. 오랜만에 온 교정은 꽤 멋졌다.



산책코스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 친구가 철학과 교수 친구다. 얼굴만 봐도 공부만 했을 것 같다.

 


우리는 교내를 1시간 30분 정도 산책하고 철학 강연을 들으러 갔다. 중간에 교수 휴게실에서 커피를 한잔씩 했다. 나는 낮에 카페인을 많이 먹어 물만 마셨는데 강연 내내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강의실에는 강연을 들으러 온 학생들이 있었다. 철학과 학생들도 있고 문과대 학생들도 있었다. 외모가 하나같이 철학자의 모습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토트넘 축구를 보고, 아침에 바로 친구들과 자전거 라이딩을 하느라고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바로 걷기 모임을 참여하고 철학 강연을 들으니 너무 피곤했다. 


나는 내려오는 눈꺼풀과 싸우며 친구의 수준 높은 강연을 열심히 들었다. 


'친구 앞에서 졸면 안 돼! 이겨내자!'


친구는 독일 유학을 가서 그런지 칸트 철학의 전문가인 것처럼 보였다. 자연과학과 수학을 넘나들며 강연을 진행했고 중간중간에 질문을 던졌다. 수학 관련해서는 전공자인 나에게 질문도 했다. 다행히 이런 질문 때문에 강연에 함께 참여하여 조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인문학자와 철학가를 떠나 그의 자연과학과 수학에 대한 배경지식에 놀랐다. 


그의 강연을 비몽 사몽간에 들으며 모든 내용을 다 이해는 못했지만 철학이 어떤 분야를 탐구하는지는 확실히 알았다. 철학은 우리의 생각과 인식 체계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로 세계를 분석하느라고 만든 개념이라는 그의 강연은, 내가 요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말해줘서 흥미로왔다. 


'내가 관심 가지고 있던 주제가 철학자들이 연구하는 분야였구나! 이런 것이 철학이었구나!"



강연이 끝나고 철학과 교수의 교수실을 방문했다. 철학자 그리고 교수의 방은 어떤지 너무 궁금했다. 내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책이 가득했다. 매일매일 공부하는 교수의 삶이 느껴졌다. 


'교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정말 공부를 좋아하고 매일 공부만 해야 하는구나!'



그가 읽는 독일어로 된 책은 그의 흔적이 느껴졌다. 



강연이 끝나고 우리는 뒤풀이를 했다. 이렇게 직접 강연을 듣고 강연자와 술 한잔을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 멋진 일이다. 


대학생 시절 프랑스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당시 프랑스 철학 관련해서 유명했던 서울대의 윤소영 교수님을 함께 철학 공부하던 친구들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서울대 근처의 자기의 연구실로 우리를 초대했고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주셨다. 그리고 고량주도 시키셨다. 


당시 나는 교수님이 우리의 방문을 허락하는 것도 놀라웠는데, 점심까지 사주시는 것이 감사했다. 거기서 같이 고량주를 마시며 교수님과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을 이번에는 친구의 강연을 보면서 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대학은 그리 의미 없는 존재였는데, 대학 동기들이 이렇게 내 삶을 충만하게 해 준다. 오늘 하루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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