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었다] 1부
어젯밤 영실이 퇴근을 해보니 아내 은정이 없고 장모님이 봄이를 보고 있었다.
“아니? 장모님 웬일이세요?”
“임서방 왔는가? 봄이 엄마가 잠깐 애를 봐달라고 해서 왔어.”
“봄이 엄마 아직 집에 안 왔어요?”
“응, 밤 10시까지는 들어온다고 했는데.. 좀 있으면 오겠지.”
“무슨 일 있대요? 밖에 비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친구 좀 만나고 온다는 것 같아. 그나저나 임서방 왔으니 난 집에 가볼게.”
“네~ 장모님 고맙습니다.”
장모님이 가고 영실은 봄이 방에 들어갔다. 봄이는 토끼인형을 꽉 안고 자고 있었다. 영실은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이불을 덮어준 후 방을 나왔다. 샤워를 하고 TV를 보던 영실은 밤 10시가 넘어도 은정이 들어오지 앉자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은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는 폭우처럼 쏟아져서 창문을 열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덧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켰다. 영실은 베란다로 나가 폭우 속에서 주차장을 살펴봤다. 주차장 한편에 실내등이 켜진 차가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실은 우산을 들고 아파트 앞 주차장으로 향했다. 폭우 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실내등이 켜진 차로 다가간 영실은 휴대폰 손전등을 이용해 차량번호를 확인하고 은정의 차임을 알아챘다. 은정은 차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실은 차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차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영실은 유리창을 손으로 두들겼다. 그제야 은정은 통화를 멈추고 소리가 들린 창문 쪽을 살피며 창문을 살짝 내렸다.
“누구세요?”
“여보~ 문 열어, 나야.”
은정은 깜짝 놀라며 통화하던 휴대폰을 영실이 못 보도록 숨기고 차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영실은 차 문을 열고 선 채로 우산을 들고 은정에게 말했다.
“뭐 해? 밤늦었는데 집에 안 들어오고?”
“어~ 잠깐 빗소리 좀 듣고 있었어. 지금 나갈게.”
영실은 은정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봄이만 남겨두고 이렇게 늦게까지 뭐 하는 거야?”
“잠깐 바람 좀 쐬었어. 난 좀 늦게 들어오면 안 돼? 당신도 학교일 때문에 늦게 들어올 때 있잖아.”
“아니~ 걱정돼서 그렇지. 연락도 안 되니까. 연락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엄마한테 얘기했잖아. 늦는다고.”
“장모님이 밤 10시까지 들어온다고 했는데, 당신이 연락도 없이 안 왔잖아.”
“10시에 도착했는데 잠깐 빗소리 좀 듣고 있었어. 당신은 내가 비 좋아하는 것도 모르지? 나한테 관심이 없어.”
영실은 은정의 타박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은정이 샤워를 하는 동안 영실은 괜히 은정에게 미안해졌다. 은정이 비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자기 잘못같이 느껴졌다. 샤워를 하고 나온 은정은 피곤했는지 바로 침대에 누웠다. 영실은 은정 옆에 누우며 은정을 꼭 안았다.
“여보 뭐 힘든 거 있어?”
은정은 영실의 팔을 뿌리치고 돌아누웠다.
“나 피곤해. 자고 싶어.”
“오늘 우리 그날이잖아. 한 달에 한번 하기로 한 날.”
“아니? 당신은 그것밖에 몰라. 내가 지금 몸이 안 좋다고.”
“알았어.”
영실은 한숨을 쉬며 돌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