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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최진영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새해 들어 독서를 열심히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 2위 에 링크된 책 2권이었다. 역시 내용이 없었다.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출판사의 광고 때문인가? 한 권은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고, 한 권은 경제와 사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2권을 읽는 동안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최근 소설책을 읽은 적이 없지만, 2권의 지식도서에 실망하여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책을 읽기로 결정했다. "구"라고 하니 수학과 관련된 내용의 추리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배경지식 없이 작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


초반에 한 여자가 사람으로 여기지는 '구'라는 것을 먹는다. 피부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 엽기적이다. 계속 읽는다. 몰입감이 상당하다. 이 정도 몰입감은 신경숙이나 김형경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 아마 작가가 여자라고 생각됐다.


초중반 분위기는 일본 영화 [감각의 제국], [실락원], 일본 소설 [노르웨이 숲]과 비슷하다. 광적인 집착이 있고, 죽음에 대한 상실, 그리고 섹스가 있다. 쾌락이 아닌 소통하고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섹스다. 마치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려는 엄마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는 꼬마 여자아이의 몸부림과 비슷한 섹스다.


등장인물들은 살기 위해 섹스한다. 아니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섹스한다.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자기밖에 없는 사람들이 유일한 짝을 만나서 그를 잃지 않기 위해 섹스한다.


작가는 의도한 듯하다. 그래 내가 끝까지 희망 없음이 뭔지, 영원한 절망이 뭔지 보여주지.


친절함 없이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한 삶들이 보여진다. 요새 유튜브만 틀면 성공 포르너 영상들이 즐비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외치면서 다단계 팔이를 하고, 강의 팔이를 하고....


이런 홍수 속에서 이 책은 영원한 절망을 노래하기에 소중하고 특별하다.

끝까지 희망이 없는 삶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먹게 되는 여자의 필연성을 작가는 서술한다. 책이 끝나갈 무렵 '그래 먹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독자에게 만들어준다. 이 작가 필력이 대단하다.


1인칭 시점의 이야기 서술은 끌어당김과 몰입이 대단하다. 두 주인공이 돌아가면서 1인칭으로 이야기를 서술한다. 중간에 등장인물의 죽음을 통해 상실을 통한 섹스를 정당화한다. 생물체는 본능적으로 주변의 죽음을 겪음으로 인해, 생명을 만드는 섹스를 갈구한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섹스를 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차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숲에서도 죽은 지인을 공통으로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섹스를 한다.


희망이 없고 절망만 있는 이야기

오랜만에 읽어본다. 작가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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