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임진각 정모

타이거 바이크 정모날 아침.

공기는 아직 이른 아침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미세한 안개가 들판 위에 내려앉아 있었고, 해는 막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며 자전거의 카본 프레임을 반짝이게 했다.


운영진이 정한 목적지는 임진각이었다.

타이거 바이크(이하 ‘타바’)는 실력에 따라 고린이, 중린이, 자린이로 나뉘었고, 정모 코스는 늘 모두가 완주할 수 있는 곳으로 택했다. 임진각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했다. 길고 완만한 평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그리고 풍경까지.


출발지에는 이미 5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헬멧을 조이고, 신발 클릿을 맞추며, 각자 몸을 푸는 소리 사이로 회장 기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오늘 코스는 임진각! 총 5팩으로 나눕니다. 초고속팩은 석대장, 고속팩은 각 고린이 대장들이 맡고요. 중린이는 영실 대장, 자린이는 영호 대장.”

기현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 사이로 묘한 긴장감과 들뜬 웃음이 흘렀다.


항속 38km/h 이상을 유지하는 초고속팩의 석대장은 오늘도 무표정하게 자전거와 속도계를 점검하고 있었다. 반면 영실은 중린이 팩의 대장으로서 어깨가 살짝 무거웠다. 그에게는 10명의 회원이 배정되었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짙은 화장을 한 여성 회원.
검은 져지 위로 단정하게 묶은 머리칼이 흔들릴 때마다 햇빛이 살짝 반사되었다.

“영실 대장, 이 회원은 지원 씨야. 미용실 원장이야. 자주 오진 않는데 잘 챙겨줘. 돌싱이니까 더 잘 챙기라고.”
홍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귀띔했다.


영실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실력은 어느 정도세요?”

지원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음… 잘 못 타요. 로드는 오래 탔는데, 요즘은 일하느라 거의 못 나왔어요.”

“그럼 제 뒤로 오세요. 속도 맞춰드릴게요.”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로 섰다. 그 짧은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스쳤다. 스치고 나서야, 서로의 시선이 조금 오래 머물렀다는 걸 깨달았다.

따뜻한 눈빛. 그리고 입가의 부드러운 미소. 그 미소 하나가 이상하게 영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재형, 혹시 못 따라오는 사람 있으면 뒤에서 챙겨줘.”
“네, 대장.”

재형은 그새 실력이 늘어 중린이 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홍이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나도 후미 맡을게. 찍사 겸 안전요원이지 뭐.”
“고맙죠. 자, 출발하겠습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50여 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움직였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스치는 ‘쉬잇’ 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바람이 다리 사이를 가르고, 땀이 이마를 따라 내려왔다.

“홀~! 턱! 추월! 앞에 차!”
대장들의 구령이 공기를 흔들었다. 뒤따르는 회원들이 그 구호를 복창하며 리듬을 맞췄다.
“홀~! 턱! 추월!”


이 장면은 마치 행진이었다. 하나의 군무처럼, 타이어들이 바람을 베며 도로 위를 유영했다.

문산을 지나 임진각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강변의 바람은 더 세차 졌다. 누군가 함성을 질렀고, 그 함성은 일제히 터진 웃음소리로 번졌다.

영실은 속도를 늦추며 뒤를 돌아봤다. 지원은 약간 힘겨워 보였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가 잠시 멈춰서 지원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지원이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속도 잘 맞아요. 덕분에 숨이 좀 편해졌어요.”
영실은 뒷 주머니에서 에너지 젤을 꺼내 건넸다.
“이거 드세요. 금방 힘나요.”
지원은 그걸 받아 들며 말했다.

“감사해요. 정말 자상하시네요.”

영실은 짧게 웃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바람이 스치며 지원의 향기가 코끝을 지나갔다. 은은한 꽃내음 같았다. 오래 닫혀 있던 감정이 천천히 깨어나는 듯했다.


도착 후 회원들은 단체 사진을 찍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웃음소리와 수다로 가득했다.
영실은 자연스럽게 지원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힘들진 않았어요?”
지원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전혀요. 너무 잘 챙겨주셔서 오히려 즐거웠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때 맞은편의 홍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지원 씨, 우리 영실 대장 노총각이에요. 대기업 다니고 집도 있다니까. 잘 좀 해봐요.”
지원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아직 결혼 안 하셨어요?”
영실이 멋쩍게 웃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냥… 타이밍을 놓쳤죠.”
홍은 막걸리를 부으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영실 대장은 차도 없고 애도 없어. 둘이 결혼하면 다 생겨요. 차도, 애도.”

지원은 잔을 들고 홍을 향해 눈을 흘겼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 총각이 애 딸린 이혼녀랑 무슨 결혼이에요.”
그러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영실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묘한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다.


미용실 원장이라는 직업 때문일까, 아니면 이혼을 겪으며 다져진 단단함일까.
그녀는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영실 씨, 언제 제 미용실 오세요. 잘해드릴게요. 할인도 해드리고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폰 좀 줘보세요.”
“아, 네?”
영실이 당황한 듯 휴대폰을 내밀자, 지원은 손끝으로 빠르게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그녀의 손끝이 그의 손등을 스쳤다. 순간 전류처럼 미세한 감각이 전해졌다.

“됐어요. 이제 예약은 언제든 환영이에요.”
지원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그날 밤, 영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미소를 지었다.
라이딩의 여운이 아직 다리 근육 속에 남아 있었고, 바람에 흩날리던 지원의 머릿결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지원’이라는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화면을 끄고 창문 너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 아래에서, 무언가 오래된 감정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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