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문을 닫은 뒤, 재형은 거리로 나섰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낮에는 일용직으로 공사장에 나가 시멘트를 나르고, 해가 지면 배달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밤엔 대리운전으로 술 취한 사람들을 집까지 데려다줬다.
하루가 끝나면 손이 떨렸고, 새벽이 밝으면 다리에 쥐가 났다. 그래도 그는 쉬지 않았다.
불판 위의 고기를 태워버린 그 손으로, 이번엔 삶을 태우듯 일했다.
“재형아, 요즘 얼굴이 반쪽이야.”
영실이 말했다. 라이딩 복을 입은 재형의 얼굴은 바람에 그을려 있었다. 피로와 자조가 뒤섞인 웃음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괜찮아요. 자전거라도 타야 숨이 쉬어지니까요.”
그날 두 사람은 송추 5고개를 올랐다.
오르막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바람은 무겁게 어깨를 눌렀다. 그러나 재형은 멈추지 않았다.
“재형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영실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재형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의 뒷모습 위로 저녁 햇살이 길게 늘어졌다.
세상에선 이미 실패자로 낙인찍혔지만, 자전거를 탈 때만큼은 누구보다 승리자였다.
평균 경사도 9%의 삼막사를 오를 때, 재형은 처음으로 땀 대신 눈물을 흘렸다. 다리에 스미는 통증이 이상하게도 살아 있다는 감각처럼 느껴졌다.
“형, 이상하죠? 몸은 힘든데… 오히려 정신은 맑아져요.”
“그럴 수 있어. 몸이 버티니까, 마음이 살아나는 거야.”
그 말에 재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악 메디오폰도 대비 마지막 실전 연습은 행주에서 양수까지 왕복하며 동부 7고개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거리와 획고가 설악 메디오폰도와 비슷했다. 고개를 오르내릴수록 재형의 허벅지는 단단해졌고, 심박은 안정됐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불판 위에서 타던 인생이 이제 바퀴 아래에서 다시 불붙고 있었다.
얼마 뒤, 주성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장소인 커피숍에 들어서자 주성은 늘 그렇듯 비싼 시계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야, 너 요즘 얼굴이 왜 이렇게 말랐냐? 가게 접었다며?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주성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 말에는 걱정보단 무시와 비아냥이 묻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땐 네가 좀 안쓰럽더라.”
주성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이번에 내가 새 점포 하나 더 내는데, 내 일 같이 일해 줄 사람이 좀 필요하거든. 너, 장사 손끝이 나쁘진 않았잖아. 내 밑에서 일해보는 거 어때? 월급은 섭섭지 않게 줄게.”
재형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형,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뭐가?”
주성은 거만하게 재형을 내려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살려주겠다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넌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이 바닥은 힘없는 놈부터 사라지는 곳이야.”
그는 재형의 어깨를 툭 쳤다.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남은 건 그의 향수 냄새와, 입안에 맴도는 씁쓸함뿐이었다.
며칠 뒤,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여보… 주성 씨가 나한테 부탁했어. 새로 오픈하는 가게에 사람 필요하다고. 당신이 거절했다면서?”
재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는 피곤한 웃음을 지었다.
“나라도 돈 벌어야지. 우리 애들 학원비도 밀렸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이 낯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