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구룡령을 넘자, 길은 다시 고개를 치켜올렸다.
이제 남은 건 조침령. 표지판엔 ‘경사 10%’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기어는 이미 가장 낮은 단수에 걸려 있었다.
“형, 속도가 느려서 거의 멈출 것 같은데요.”
재형이 헐떡이며 말했다. 영실은 땀에 젖은 얼굴로 웃었다.
“괜찮아. 이렇게 느리게 가는 게 맞아. 업힐은 싸움이 아니라 버티는 거야.”
둘은 거의 걷는 속도로 고개를 올랐다. 숨소리와 페달 돌리는 소리만 들릴 뿐, 세상은 고요했다.
“재형아, 안장 조금 앞으로 당겨서 앉아. 몸 중심이 앞에 있어야 업힐이 훨씬 쉬워.”
“이렇게요?”
“응, 그 자세로 계속 가. 힘도 덜 들고 더 버틸 수 있어.”
재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요즘 고시원에서 살아요.”
영실이 고개를 돌렸다.
“고시원?”
“네. 아내가… 위장이혼을 하자고 해서요.”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섞여 흔들렸다.
“가게 망하면서 진 빚이 너무 많아요. 집도, 차도, 통장도 다 압류당할 뻔했어요. 은행에서 매달 독촉장이 왔고요. 아이들 학비까지 압류될 수도 있어서,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그냥 이혼하자. 형식적으로라도.’ 그래야 집이라도 지킬 수 있다고요.”
영실은 말없이 페달을 돌렸다. 도로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처음엔 믿었어요. 그녀가 애들을 위해 그러는 줄 알았죠. 그래서 모든 재산을 아내 명의로 돌렸어요. 저는 빚만 남았고요.”
재형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혼하고 나니까… 세상이 조용해지더라고요. 전화도, 사람도, 집도 다 사라졌어요. 그냥 고시원 방 하나에, 달력 한 장 걸려 있고요. 그거 보면서 하루를 살아요.”
영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엔 가쁜 숨소리와 바람 소리만 남았다.
“일은 계속 하지?”
“하죠. 근데… 문제는 통장이에요. 제 이름으로 들어오는 돈은 다 차압돼요. 그래서 친척 명의로 일하고 있어요. 배달, 일용직, 편의점… 뭐든지요.”
재형은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끔은요, 내가 지금 사람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낮엔 남의 이름으로 일하고, 밤엔 내 이름으로 돌아오니까요.”
영실은 그 말을 듣는 내내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목 뒤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마치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고갯마루가 보였다.
재형은 숨을 고르며 웃었다.
“형, 이 길이 제 인생 같아요.”
“조침령이?”
“네. 끝이 안 보이고, 내려가는 길은 없고, 그래도 멈추면 안 되잖아요.”
영실은 재형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어딘가 단단해 보였다.
“그래. 멈추지 마. 인생은 편하게 내려가는 내리막보다, 버티는 오르막이 더 많으니까.”
재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올랐다. 그 모습이 재형의 희미한 의지처럼 하늘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