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흔들릴 때 인간은 도망친다
오랫동안 나는 학원을 그만두고 싶었다. 아이들이 싫은 것도 아니었고, 수업이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원 문을 열기 전부터 몸 안에서 무음의 긴장이 일었다.
마치 내 존재 전체가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것처럼.
그 감정의 정체를 나는 최근에서야 정확히 이해했다.
학원이 싫었던 이유는 학원이 ‘나의 능력’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학원이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일이 힘들다.”
“공부가 싫다.”
“관계가 피곤하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말들은 모두 표면적이다. 사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은 ‘일’이나 ‘공부’ 그 자체가 아니다. 일 앞에서 드러나는 나, 공부 앞에서 드러나는 나, 관계 앞에서 드러나는 나 —이 ‘나의 실체’가 두려운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공간에서 아이 하나가 집중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내 내면의 무능력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수학 교육 전문가로서의 ‘기술’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본래 별것 아닌 존재가 아니었을까?”라는 오래된 불안이 되살아났다.
인간은 실패보다 정체성이 폭로되는 순간을 더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직장을 ‘노예제’라고 비유한다. 이 표현이 과격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존재론적 진실을 담고 있다.
직장인은 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은 인간에게 이렇게 말하는 공간이다.
“너의 존재 가치는 너의 능력으로 증명하라.”
그리고 그 능력은 매일, 매달, 매년 평가되고, 비교되고, 측정된다.
KPI
성과표
경쟁
보고서
승진 누락
실수에 대한 즉각적 낙인
이 모든 것이 “너는 네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라는 시그널을 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장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드러나는 ‘작고 위태로운 나’를 피하는 것이다. 일이 싫은 것이 아니라 ‘나는 대체 가능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라는 감각이 싫은 것이다.
아이들은 수학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학은 지식이 아니라 자존감의 시험대다.
수학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존재의 취약함이다.
틀리는 순간 느껴지는 모욕감
비교당할 때의 무력감
평가표가 자신의 전부인 것 같은 착각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이되는 공포
실수가 능력 부족의 증거가 되는 구조
아이들은 수학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 앞에서 무너지는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학생, 직장인, 그리고 나.
셋 다 다른 문제를 겪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구조를 통과하고 있다.
평가가 존재를 위협할 때 인간은 학원도, 직장도, 공부도 버리고 싶어진다.
나는 학원을 피해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야 알았다.
나는 학원을 피한 것이 아니라 학원이라는 장소가 비추는 나를 피한 것이다.
학생은 수학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 앞에서 무능력해지는 나를 피한다.
직장인은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 앞에서 존재 가치가 흔들리는 나를 피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문제가 단순해진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 앞에 선 ‘나의 모습’이다.
이 질문은 철학적이지만 답은 의외로 실천적이다.
실수는 존재의 실패가 아니라 지능의 탐색이다.
인간의 존재는 다른 존재와 비교될 수 없을 때 비로소 확장된다.
자발적 행위는 존재를 강화시키고 강제적 행위는 존재를 축소시킨다.
존재가 안전해야 인간은 능력을 발휘한다.
평가의 구조를 벗어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배운다.
직장도, 공부도, 삶도 결국은 같은 구조로 돌아온다.
나는 학원을 떠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떠나고 싶었던 것은 학원이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두려움이었다.
학생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도 같고, 직장인이 출근을 미루는 이유도 같다.
인간은 일이 힘들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버티지 못할 때 도망친다.
그리고 존재가 안전할 때 인간은 자연스럽게 배우고, 일하고, 자란다.
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진실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삶의 문제는 거의 모두 ‘대상’이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는 것을.
이 순간, 도망치고 싶었던 공간은 우리의 성장을 돕는 공간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