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시의 현실과 따로 노는 고등학교 교육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이해된다!

수능이 끝나고 논술 수업을 하러 대치동에 가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이 수능을 기대만큼 보지 못한 학생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수능 성적이 충분히 잘 나온 학생이라면 이미 더 높은 대학을 정시로 노리기 때문에, 미리 접수해 둔 논술 고사를 보러 오지 않습니다. 결국 논술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은 대체로 최저 등급은 맞춘 학생들, 즉 일정 수준은 확보했지만 정시로는 아쉬운 학생들이죠.


매년 재수생들을 보며 느끼는 점은 이겁니다.
“도대체 누가 수능을 잘 보는 걸까?”
상대평가라는 구조 자체가 ‘잘 보는 학생은 극히 소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내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수시 전형으로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최소한 반에서 3등 이내, 즉 상위 10% 정도의 내신은 확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결국 지방대 진학을 고민하거나 재수를 선택하게 되죠. 기대치가 있는 학생일수록 “3년을 이렇게 보내고는 대학을 못 가는구나”라는 현실과 마주하며 재수의 길을 택합니다.



인서울이 목표라면 고등학교 생활은 효율적이지 않다

수능 과목은 문과 기준으로 국어, 영어, 수학(수1·수2·확통), 사탐 2과목뿐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과목을 배웁니다.
수행평가, 내신 시험 준비, 동아리 활동, 각종 프로젝트까지…


수능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내용에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하게 됩니다. 상위 10% 이외의 학생들에게는 고등학교 과정이 입시 기준으로 보자면 매우 비효율적인 셈이죠. 고3이 되어서야 “내신으로는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능 준비를 하려고 해도, 이미 학교 일정 때문에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1 때부터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 아이의 사례

제 큰딸도 결국 수능과 논술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과학중점반에서 배우는 수많은 수과학 과목들은 내신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수능 준비 과정에서도 과목 수가 너무 많아 비효율이 커졌습니다.


상위권 대학들이 올해부터 문·이과 교차지원을 폭넓게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수학은 확통, 탐구는 사탐을 선택해 문과 학생들과 경쟁하는 전략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제 딸 역시 이 로드맵으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3 학교 수업에서는 확통도 사탐도 배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입시 전략과 학교 수업이 완전히 따로 노는 셈이죠.



학부모가 겪는 현실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누가 대신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결국 재수 말고는 대안이 없습니다.
이 현실을 잘 아는 학부모라면, 입시를 최우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둘째 딸 학교는 고1인데도 자퇴가 상당히 많아 전교생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내신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상위권 아이들의 등급 확보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입시 중심으로 보면, 후배 학부모들이 고등학교 선택을 할 때 “우리 아이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입시는 냉혹하게 현실과 아이의 현재 수준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등학교 3년은 상위권 학생들의 내신을 만들어주는 조력자로 끝날 수 있습니다.



고교 교육과 입시가 따로 노는 구조, 바뀌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고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이 수능에 반영된다면?
→ 내신이 나빠도 수업을 충실히 들은 학생들은 손해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공계 대학은 실제로 이공계 과목을 이수한 학생만 지원 가능하다면?
→ 현재처럼 수과학을 많이 배운 학생이 손해 보는 구조는 완화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입시가 철저히 따로 움직이는 구조에서는 많은 아이들과 부모가 ‘자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 괴리를 줄여야 아이들의 시간과 노력이 의미 있게 쓰일 수 있겠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