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근원 생각이 바뀌면 충만함은 ‘저절로’ 따라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살고 싶어 한다.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고, 일이 잘 풀리고, 인간관계도 부드러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침마다 다짐한다.
오늘은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오늘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지.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 가지 않는다. 똑같은 일이 생기면 똑같이 불안해지고, 조금만 틀어지면 다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고, 좋았던 마음가짐은 금세 과거로 밀려나고 만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탓한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하지?”
“나는 왜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 못하지?”
“내 의지가 부족한 걸까?”
그러나 이것은 의지나 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긍정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삶의 구조가 부정성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마음만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욕망의 혼동’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한 것을 거의 항상 착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는다.
돈이 많아야 여유롭다
집이 넓어야 안전하다
직장이 안정돼야 행복하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야 마음이 놓인다
타인의 인정이 많아야 내가 가치 있다
하지만 이건 ‘삶의 본질적 욕망’이 아니라 사회가 심어준 생존 논리에 가깝다. 사람들은 평생 이 껍데기를 쫓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진짜 원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감각조차 잃어버린다.
여유인가? 자유인가? 안정인가? 성장인가? 사색인가? 고요인가? 창조성인가? 즐거움인가?
감정이 보이지 않으니 삶은 방향 없이 흔들리고, 긍정은 텅 빈 주문처럼 허공에 흩어진다.
사람의 감정은 ‘삶의 구조’에 반응한다. 구조가 결핍을 만들어내는 형태라면 그 안에서 긍정은 절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시간이 없다
일이 많다
관계가 얽혀 있다
고정비가 많아 압박이다
현재의 구조에서 자유가 없다
삶이 쫓기고 조절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기울어진 탁자 위에서 컵을 세우는 것과 같다. 구조가 부정성을 만드는데 감정만 긍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긍정은 마음가짐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의 부산물이다.
근원 생각이란 “나는 어떤 감정의 삶을 원하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뿌리 깊은 인식이다.
결핍 기반 근원 생각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미래는 불안하다
더 가져야 안전하다
더 성취해야 의미가 있다
그러면 삶은 그 생각에 맞게 구조화된다. 시간도, 일도, 관계도, 경제도, 목표도 모두 결핍 기반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근원 생각이 충만 기반으로 바뀌면 감정은 억지로 긍정할 필요가 없다. 삶이 자연스럽게 충만한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때 긍정은 “해야 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무위(無為)’의 본질이다.
나 역시 오래전까지 이렇게 믿었다. 수천억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이 믿음 위에서 삶의 대부분을 결핍 구조로 움직였다.
강남 아파트가 있어야 했고, 독일 스포츠카가 있어야 했고, 동해안 별장이 있어야 했고, 자유롭게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은 엄청난 부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물질들을 하나씩 분석해봤다.
저것들이 진짜 내게 주고 싶은 것이 ‘물질 그 자체’였을까?
강남 아파트를 사고 싶은 이유 속에는 안전감이 아니라 여유로운 동선과 한강 옆의 삶의 흐름이 숨어 있었고,
독일 스포츠카의 광택 아래에는 속도와 힘이 아니라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행복감이 있었고,
동해안 별장의 환상 속에는 부동산이 아니라 바다와 고요 속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물질을 걷어내고 감정만 추려보니 딱 네 가지가 남았다.
여유, 자유, 글, 여행
이 네 가지가 내 삶의 본질이었고 그 본질은 사실 수천억이 아니라 지금 당장도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었다.
강남 아파트의 본질이 한강과 동선이라면 경기도 한강 근처에 분양받은 아파트면 충분했다. 자전거로 10분이면 한강이었고 아이들도 대학에 들어가면 서울과 통학이 가능한 위치였다.
동해안 별장 대신 평일의 저렴한 숙소가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사실 별장은 ‘고정비가 큰 족쇄’일 뿐이었다.
스포츠카 대신 전국을 누비며 글을 쓰고 차박할 수 있는 대형 전기차면 충분했다. 내가 원하는 건 속도나 브랜드가 아니라 어디든 머물 수 있는 자유였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이미 마라톤과 자전거 대회로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글과 사색의 시간은 돈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는 사실이었다.
하루 몇 시간만 재배치해도 그 시간은 만들어졌다.
학원 수업을 점차 줄이고 비대면 수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강연·책·유튜브·글쓰기 수익 구조를 하나씩 만들어가자 삶 전체가 새로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수업이 모두 비대면이 되면 대형 전기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면서 수업하고 글 쓰는 삶이 가능하다.
평일의 여행지는 한산하고 숙소는 싸고, 원한다면 차박도 가능하다.
목포에서 강연을 하고 몇 날 며칠 그곳에 머물며 글을 쓰고 주변을 여행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구조는 수천억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도 충분히 구축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꿈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더 이상 억지로 긍정하려 하지 않는다.
긍정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삶의 구조가 만드는 자연스러운 시각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근원 생각이 바뀌고 구조가 그 생각을 뒷받침하면
긍정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불안이 들어올 틈이 없고
충만함은 저절로 생기고
선택은 자연스럽게 단순해지고
삶은 자신만의 속도로 흐르고
부정은 발붙일 자리 자체가 없다.
긍정은 노력으로 만드는 태도가 아니라 삶의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태다.
구조가 결핍이면 마음은 흔들리고, 구조가 충만이면 마음은 저절로 평온해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그대로 증명한다.
원하는 삶은 거대한 부가 아니라 정확한 구조로부터 온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