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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과 상상 Jul 16. 2023

망우산~아차산 트레킹

트레킹이라는 것을 해보다

대학 동기들 소모임 중에 여행 소모임이 있다. 여행 소모임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공지가 떴다.


<아차산 야경 & 와인 트레킹>

토요일 16시 경의 중앙선 양원역 집결 

16~19시 서울/한강 야경 관람하며 가벼운 트레킹, 아차산 정상에서 화이트로 석양주

19시 광나루 쪽으로 내려와서, 삼성통닭 치맥으로 뒤풀이 

트레킹 난이도 안내 : 아차산은 서울에서 가장 낮은 산 중 하나(북한산의 절반에 못 미침). 양원역에서 가면 중턱에서 오르는 셈이어서 바로 능선길. 능선길은 대부분 데크 깔려있음. 데크 마지막에 살짝 깔딱 고개. 용마산에서 아차산 넘어가면 대부분 내리막길. 결론? 서울에서 젤 쉬운 등산로. 



지도로 보니 넉넉잡고 3시간 코스다. 그리고 일정이 왠지 끌린다. 아차산 정상에서 화이트로 석양주

사실 화이트가 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삼성통닭으로 뒤풀이. 삼성통닭은 대학 시절 자주 먹던 치킨집이다. 광나루역 근처에도 분점이 있는가 보다. 추억의 삼성 통닭도 땡긴다. 그리고 이번주 토요일은 오후 일정이 없다. 


나는 개인 사업자라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른다. 바쁘면 1년 내내 지인들을 만나지도 못한다. 시간이 날 때 경험하고 싶은 것들은 최대한 경험해야 한다. 


토요일, 중3 딸이 처음 가는 국어학원을 갔다 와서 늦게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 왔다. 난 수업은 끝났지만 중3 딸 수학을 조금은 챙겨줘야 한다. 과제 점검과 몇 가지 질문을 받고 과제를 내준다. 벌써 시간이 3시다. 부리나케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열차시간에 맞춰 뛰어서 간다. 


큰일 났다. 도착 예정시간이 4시 40분이다. 동기들과 만나서 출발하는 시간이 4시인데 40분이나 늦는다. 약속 장소에서 멀리 살고 있다는 것과 경의선이 시간 맞추기 힘들다는 것을 간과했다. 동기들에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출발하라고 한 후, 양원역에 내려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처음부터 낭패다. 주위에 표지판이 없다. 주변 할머니들에게 물어물어 망우산을 찾는다. 그러나 망우산은 나타나지 않고 계속 차도만 나온다. 카카오맵을 켜고 지도를 보며 걷는다. 자전거 라이딩의 경우는 카카오 맵이 자세히 길을 안내해 주는데, 도보 이동은 그렇지 못하다. 역시 몇 번을 헤매고 망우산 등산로를 찾았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비가 보슬보슬 내려 시원하고 공기도 너무 좋고 풍경도 아름답다. 일단 지름길처럼 보이는 오솔길로 올라간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동기들을 따라잡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비가 와서 미끄럽고 진흙에 빠진다. 군대 있을 때 훈련하며 산을 하도 올라 제대하고 등산은 거의 하지 않았다. 등산에 대한 기억은 군대 훈련하며 겪은 힘든 기억밖에 없었다.  



한참을 오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다시 군대 온 것처럼 등산을 하지? 동기들과 같이 못 가면 좀 어때, 나도 이곳을 좀 보고 느껴야지. 운동하러 온 건 아니잖아'

그리고 주변을 바라봤다. 비로소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도 길을 헤맨다. 표지판이 있지만 가다 보면 애매하게 양갈래길이 있다. 한 길을 선택해서 가면 어느 순간 길이 끊긴다. 그럼 다시 빽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와 반대편 길을 선택한다. 익숙하지 않은 코스에서 홀로 하는 등산은 인생과 비슷하다. 불안하고 두렵지만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한 길을 따라 힘들게 걸었지만 길이 끊기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반대편 길을 선택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느낌이 좋다. 뭔가 쉽지 않은 미션, 앞이 보이지 않지만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 느낌을 자린이 2주 차 때 임진각까지 90km를 왕복할 때도 느꼈다. 카카오맵이 배터리를 빨리 닳게 해서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자전거를 타다가 여러 번 길을 잘 못 들곤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배터리가 아예 없어 어두운 밤길을 오직 기억에만 의존해서 가다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진입해서 사고가 날 뻔도 했다. 그러나 항상 끝은 있었다. 그때도 9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집에 돌아왔다. 


어느새 망우산 정상에 온 것 같다. 이제 아차산으로 가자.



한 참을 가니 풀들이 누워있다. 여기서 잠깐 잠을 청하고 싶다.



드디어 아차산이다. 570 계단을 일단 올라야 한다.



계단을 다 오르니 너무 힘들다. 난이도가 서울에서 가장 쉽다는 말만 듣고, 신발도 평소 신던 가벼운 여름 운동화에 물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왔다.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몸과 군대에서 화악산을 오르던 경험을 너무 과대 평가했나 보다. 신발은 진흙에 빠져 만신창이가 됐고, 2시간 등산을 하니 목이 너무 말랐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너무 극한 체험이다. 자전거 라이딩을 갈 때는 물도 2통 준비하고 이것저것 간식도 준비해서 혹시 모를 저혈당에 준비한다. 오늘은 동기들을 믿었는지, 나를 믿었는지 너무 준비가 부실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약수터다. 약수터가 2곳이나 있었다. 이곳에서 물도 먹고 얼굴도 씻는다. 얼음물처럼 매우 차고 시원하다.



드디어 아차산 정상에 온 듯하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고 장맛비로 불은 한강물이 보인다.



잠깐 경치를 관람하고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너무 여유로왔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곧 있으면 뒤풀이 시간이다. 하산길을 찾는다. 용마산으로 내려가는 길도 보이고, 아차산 끝자락 광나루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보인다. 광나루 쪽으로 내려가면 족히 한 시간은 더 등반을 해야 할 것 같다. 늦게 온 것도 미안한데 뒤풀이까지 늦으면 예의가 아닐 것 같다. 용마산 하산길을 선택한다.



용마산 쪽에는 수영도 가능한 계곡이 있었다. 계곡 바위에 앉아 잠깐 땀을 닦는다.



비록 오늘 정해진 코스대로 완주는 못했지만, 아주 멋진 코스였다. 담에는 혼자 완주해 보리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런 멋진 코스를 알려준 동기들이 고맙다. 이 코스의 가장 맘에 드는 점은 대중교통으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의선 양원역에 내려 공원길을 끼고 망우산에 오르고, 능선을 따라 아차산으로 이동한다. 아차산 끝자락 광나루 쪽으로 하산하면, 바로 5호선 광나루역이 있다. 


용마산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다 내려와서 차도를 찾기가 힘들다. 온통 동네길이고 작은 빌라들이 즐비하다. 20분을 넘게 걸어서야 택시를 잡을 수 있는 차도를 찾았다. 택시를 타고 뒤풀이 장소로 향한다. 아쉽게도 삼성통닭은 인원수가 많아 예약이 안된단다. 추억의 삼성통닭을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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