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붙이는 이야기와, 그것을 벗는 법
우리는 늘 원인과 결과를 찾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 사람이 저런 행동을 했는지, 왜 오늘 하루가 불편했는지.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 원인과 결과는 대부분 외부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야기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일 뿐인데 그 이야기가 내 감정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점.
사건보다 빠른 것은 해석이다. 그리고 해석은 외부가 아니라 내 상태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불안한 사람: “나를 불편해하나? 관계가 멀어진 건가?”
결핍 상태의 사람: “내가 뭔가 잘못했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 “바쁘겠지.”
투명한 사람: “읽히지 않았다.” (그게 전부)
여기서 중요한 건 “어느 해석이 맞는가”가 아니다. 핵심은 해석이 감정과 현실을 만든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인데 해석만 달라졌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
우리는 원인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불안하면 → 외부는 전부 ‘위협의 근거’가 된다
결핍이면 → ‘내 탓’이 찾아진다
비교하면 → ‘증명해야 할 나’가 등장한다
충만하면 → 사건은 ‘그냥 지나가는 흐름’이 된다
투명하면 → 사건은 ‘의미 없음’으로 돌아간다
해석은 외부의 진실이 아니라 내 내부 상태의 그림자다.
진짜 수행자들은 세상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다. 원인도 내려놓고 결과도 내려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인과 결과를 붙이는 순간, 의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불교의 스승들은 “분별을 내려놓아라”라고 한다. 티벳 승려들은 “현상을 붙잡지 마라”라고 말한다. 일본 선승들은 “생각 이전의 마음을 보라”라고 한다. 말은 다르지만 지점은 같다.
“비가 온다.”
“바람이 분다.”
“몸이 아프다.”
“사람이 말을 했다.”
여기에 원인도, 의미도, 평가도 붙지 않는다. 사건은 그냥 ‘일어난 것’이고 그걸 붙잡지 않는 것이 투명함이다.
예민한 사람: “나를 싫어하나?”
불안한 사람: “내 평가가 나쁘지 않나?”
과거 상처가 있는 사람: “또 무시당했다.”
충만한 사람: “피곤해 보이네.”
투명한 사람: “지나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옳은가가 아니다. 누구의 해석이 자신을 덜 흔드는가다. 투명한 사람은 사건에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이 요동하지 않는다. 이게 수행자가 갖는 ‘가벼움’이다.
우리는 외부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만든 해석 때문에 힘든 경우가 훨씬 많다.
해석 → 감정 발생
감정 → 행동 변화
행동 → 현실 결정
이 구조를 알게 되면 바깥을 바꾸는 것보다 내 상태를 바꾸는 것이 훨씬 강력한 전략이라는 걸 보게 된다.
투명함은 세상을 ‘무감각하게’ 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해석 없이 보는 힘이다.
평가 이전
원인 이전
의미 이전
해석 이전
그 자리에서 보는 순간 세계는 나를 흔들지 못한다. 좋고 나쁨이 붙기 전에 그냥 그런 현상으로 지나간다. 이때 의식은 왜곡을 멈춘다.
외부가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붙인 원인과 결과가 나를 흔든다.
해석을 잠시 멈추는 순간, 세계는 투명해진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내 세계는 달라진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심리 조절이 아니라 의식의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