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연애 상담 오류를 수학적 논리로 분석

수학적 사고란 무엇인가?

“사랑하면 놓아줘라”는 말이 왜 연애 문제에서는 위험해지는가?


얼마 전 법륜 스님이 한 청년의 연애 고민을 상담해 주는 영상을 봤다. 사연은 단순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청년은 여자와 2년 동안 연애를 했다. 그런데 여자는 사귀는 도중 소개팅을 했고,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가 더 잘 맞는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자는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을 결심했고, 이미 양가 부모를 만나는 자리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청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2년을 함께한 자신을 정리하고 한 달 만난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는 선택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청년의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욕심이며, 여자의 입장은 없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2년 동안 이렇게 했는데”라는 말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여자가 원하는 선택을 존중하고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1️⃣ 이 사연에서 청년이 먼저 해야 할 일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사연에서 청년은 여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여자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 해결의 순서가 그렇다는 뜻이다.


청년이 해야 할 질문은 이거다.

나는 왜 떠난 여자를 놓지 못하는가?

이 괴로움은 사랑 때문인가, 버려졌다는 감각 때문인가?

나는 그녀를 잃은 것이 아픈가, 나 자신이 무너진 것이 아픈가?


많은 경우, 사람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 애착 구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애착 관계 실패, 조건부 사랑, 버려질 것에 대한 공포, “나는 혼자서는 괜찮지 않다”는 무의식.


이런 구조를 가진 사람은 상대가 떠나겠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를 잃는 게 아니라 자기 존재를 잃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청년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여자를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자기 집착의 뿌리를 먼저 분석하고 치유하는 것.


청년이 여자를 놓지 못하는 것은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청년 자신의 정신적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문제의 치유가 무엇보다 우선이다. 여기까지는 법륜 스님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그다음 단계에서 드러나는 논리적 모순

이제 그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녀가 원하는 선택을 존중하고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 성립하려면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청년이 여자를 ‘법륜 스님이 말하는 수준의 사랑’으로 사랑했는가?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분명하다.

상대를 소유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그런 사랑을 받은 여자가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한 달 만에 결혼을 결심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말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굳이 다른 이성을 탐색하지 않는다. 이미 관계 안에서 충분히 충만하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논리가 충돌한다.


청년이 그런 사랑을 했다면 → 여자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가 떠났다면 → 그 사랑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거나, 여자가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참일 수는 없다.




3️⃣ 이 사연의 핵심을 명제로 바꾸면 단순해진다

이 사연을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정리하면 명제는 하나다.


명제 1.
인간은 충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다른 관계를 탐색하지 않는다.


이 명제가 거짓이라면, 사람은 언제든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난다. 사랑, 신뢰, 애착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신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이미 충만한 관계 안에서 굳이 다른 선택지를 탐색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명제가 참이라면, 다음 명제도 자동으로 따라온다.


명제 2.
한 달 만에 다른 사람과 결혼을 결심한 여자는 이전 관계에서 ‘충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도덕 판단이 없다. 구조 분석만 있다.




4️⃣ 그렇다면 문제는 청년의 사랑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청년이 더 잘 사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왜냐하면 사랑의 질과 사랑을 수용하는 능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정적이고 성숙한 사랑이라도 그 사랑을 받아 담을 그릇이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안정 = 지루함

평온 = 불안

깊이 = 위협


그래서 선택은 늘 같다.

더 빠른 확신
더 강한 자극
더 즉각적인 결합


한 달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사실은 사랑의 깊이를 증명하지 않는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구조를 드러낼 뿐이다.




5️⃣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가장 위험해지는 지점

여기서 흔히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천생연분.

하지만 이 사연에서의 천생연분은 이렇게 번역해야 정확하다.


결핍이 맞물린 결합


여자는 자기를 떠받드는 존재를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한다.

남자는 자기가 필요하다는 감각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서로의 결핍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 강한 결속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 관계의 특징은 명확하다.

혼자서는 불안하다

떨어지면 무너진다

관계가 끝나면 공황이 온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상호 의존적 병리 구조다. 그래서 소위 천생연분이라는 연인들은 상대방이 죽으면 따라 죽을 결심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결핍을 채워 줄 사람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6️⃣ 여기서 “사랑하면 놓아줘라”는 말은 오류가 된다

이제 다시 법륜 스님의 말로 돌아가 보자.

“사랑한다면 놓아줘라.”


이 말은 상황을 무시할 때만 성립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항상 남겨진 사람에게만 요구되기 때문이다.

떠난 여자는 분석 대상이 아니다

환승의 구조도 다뤄지지 않는다

관계 처리 능력도 묻지 않는다


대신 청년에게만 요구된다.

내려놔라
욕심이다
집착이다


이건 사랑의 가르침이 아니다. 책임 분배의 실패다.




7️⃣ 이 사연의 결론은 이것이다

이 사연에서 청년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여자를 이해하려 하지 말 것

자기 애착 구조부터 해부할 것

놓아줌을 도덕이 아니라 결과로 만들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문장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

“그녀가 떠난 것은 내가 사랑을 못해서가 아니다.”


이걸 분리하지 못하면 사람은 성찰이 아니라 자기부정을 하게 된다.


사랑은 떠나보내는 능력이 아니라, 떠나간 이유를 미화하지 않는 정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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