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1편 :

착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 결핍의 착함과 충만의 착함

요즘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애매해졌다. 칭찬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딘가 불편한 평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착한데 왜 늘 지쳐 있을까?
착한데 왜 관계가 자주 틀어질까?
착한데 왜 마음은 점점 공허해질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구분하게 됐다.

착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




착함은 행동이 아니라 출처다

사람들은 보통 착함을 행동으로 판단한다.

먼저 챙겨준다

잘 참아준다

손해를 감수한다

상대 입장을 배려한다


하지만 문제는 행동이 아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디에서 나왔느냐가 다르다.

나는 이걸 이렇게 나눈다.

결핍에서 나오는 착함

충만에서 나오는 착함


겉으로 보면 거의 똑같다. 하지만 그 착함을 하고 난 뒤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결핍의 착함

결핍의 착함은 이 문장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그래서 이 착함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조건이 붙는다.

고마워해주길 바라고

알아주길 기대하고

기억해 주길 원한다


겉으로는 헌신적이지만, 속에서는 계속 계산이 일어난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이 착함의 특징은 분명하다.

반응이 없으면 서운해지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 화가 나고

결국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결핍을 사람을 통해 처리하려는 구조의 문제다.




충만의 착함

충만의 착함은 질문이 다르다. 아니, 질문이 거의 없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된다


그래서 행동은 비슷해 보여도 느낌은 전혀 다르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괜찮고

거절당해도 마음이 줄지 않고

착함을 해도 자존감이 변하지 않는다


이 착함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여유가 흘러나온 결과에 가깝다.




두 착함을 가르는 가장 쉬운 기준

이 질문 하나면 거의 구분된다. 이 착함이 거절당해도 괜찮은가?

괜찮지 않다면 → 결핍의 착함

아무렇지 않다면 → 충만의 착함


착함의 질은 의지가 아니라 상태에서 나온다.




내가 이 차이를 가장 또렷하게 느낀 장면

이걸 가장 분명히 느낀 건 내가 운영하는 수학 카페에서였다. 매일같이 수학 고민 글이 올라온다. 그 글들에 댓글을 남기다 보니 내 상태에 따라 댓글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충만할 때 남기는 댓글

여유가 있고, 마음이 안정돼 있을 때 “아, 이건 내가 도와주고 싶다”는 느낌이 올라온다.

이때 나는 문제를 먼저 보지 않고 사람을 본다. 댓글을 남기고 나면 오히려 내가 더 충만해진다.


생존 모드에서 남기는 댓글

바쁘고 지쳐 있을 때 운영자니까, 책임이니까 남긴다. 틀리진 않지만 기쁘지도 않다. 이건 착함이라기보다 역할 수행이다.


결핍에서 남기는 댓글

이 댓글을 남겨야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때는 반응이 없으면 허탈해지고, 고맙다는 말이 없으면 괜히 마음이 상한다. 겉으로는 가장 성실해 보이지만 속은 가장 불안정하다.




그래서 내가 세운 원칙

요즘 나는 수학 고민 글에 바로 댓글을 달지 않는다.

내가 충만한지

여유가 있는지

진짜 돕고 싶은 마음인지

이걸 먼저 본다.


착해지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먼저 충만해지려고 한다. 착함은 목표가 아니라 상태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착함이 문제인 게 아니다. 착함으로 나를 증명하려 할 때, 관계가 무거워진다.

충만한 사람도 착하다. 다만 그 착함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순간부터 착함은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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