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3편

인정욕구는 왜 도움의 얼굴을 쓰는가?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결핍의 형태>


사람들은 보통 인정욕구를 이렇게 생각한다.

잘난 척, 과시, 드러내기, 주목받기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볼 때 이렇게 말하며 안심한다.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야.”
“나는 그냥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야.”

하지만 인정욕구는 항상 드러나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교묘한 형태는 ‘도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도움과 인정욕구의 차이는 행동이 아니라 목적이다

겉으로 보면 두 행동은 거의 같다.

설명해 준다

해결해 준다

대신 챙겨준다

시간을 써준다


하지만 안쪽의 목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도움이 목적이면 → 상대가 성장해도 괜찮다

인정이 목적이면 → 상대가 나를 계속 필요로 해야 한다


이 차이를 스스로 모르면 도움은 어느 순간부터 관계를 붙잡는 방식으로 변한다.




왜 인정욕구는 ‘도움’으로 위장할까?

이유는 단순하다. 도움은 가장 안전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착해 보이고

이타적으로 보이고

비난받지 않는다


그래서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직접적으로 “나 좀 봐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행동한다.

필요해지는 자리에 들어간다

없어지면 곤란해질 역할을 맡는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만든다

이때 관계는 미묘하게 변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인정욕구에서 나온 도움에는 항상 불안이 깔려 있다.

내가 없으면 이 관계는 유지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

그래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한다.

이 관계가 나 없이도 굴러갈 수 있는가?

내가 없어도 괜찮은가?


오히려 반대의 상황을 만든다.

나 없이는 안 되는 구조

내가 빠지면 공백이 생기는 구조

겉으로는 헌신이지만, 구조적으로는 의존을 설계하는 행위다.




전문가와 부모가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

이 구조는 특히 전문가, 교사, 부모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가르치는 위치

도와주는 역할

책임지는 자리


이 역할들은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도 내가 봐줘야지.”

하지만 이 말의 안쪽에는 이 감정이 숨어 있다.

“나는 여기서 필요하다.”


이 감각이 사라질까 봐 사람은 더 많이 돕고, 더 깊이 개입하고, 더 쉽게 소모된다.




인정욕구에서 나온 도움의 결과

이 도움은 결국 세 가지 결과로 끝난다.


상대는 성장하지 않는다 — 이미 누군가 대신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도와준 사람은 지친다 — 반응이 줄어들수록 허탈해진다

관계는 무거워진다 — 고마워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말이 나온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이때 도움은 이미 순수한 행위가 아니다.




도움을 멈추는 게 답일까?

아니다. 도움을 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이 질문이다.

이 도움은 상대를 위해서인가, 나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인가?

이 질문에 솔직해질 수 있다면 도움은 다시 가벼워진다.




도움을 충만으로 되돌리는 기준

나는 요즘 이 기준을 쓴다.

이 도움을 해도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이 도움을 한 뒤 고마움을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이 도움을 하지 않아도 나의 가치는 줄지 않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을 때만 그 도움은 충만에서 나온다.





인정욕구는 가장 안전한 얼굴로 우리를 속인다.

바로 ‘도움’이라는 얼굴로.

그래서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건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하게 만든 내 마음의 목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 시대, 중고생들은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