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마지오와 조세프 응우엔이 알려준, 생각의 진짜 얼굴
우리는 하루 종일 생각 속에서 산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에서는 쉼 없이 말이 흘러간다.
“이건 잘못됐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우리는 이 속삭임들을 너무 쉽게 사실로 믿는다.
마치 생각이 현실을 정확하게 비추는 카메라인 것처럼.
하지만 여기서 묻고 싶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이 생각들, 정말 믿을 만한 걸까?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디마지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통, 생각 → 감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구조는 오히려 이쪽에 가깝다.
몸의 상태 → 감정 → 생각
불안하면 걱정이 붙고, 지치면 세상이 버겁게 보이고, 편안하면 “괜찮겠지” 하고 넘길 수 있다. 같은 상황인데 어떤 날은 별일 아니고, 어떤 날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생각이 감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감정이 “그에 어울리는 생각”을 불러온다.
몸은 늘 변한다.
긴장
심장 박동
호흡
피로
이완
그리고 뇌는 이 변화를 감지하고, 그 상태를 이야기와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야기를 현실 그 자체라고 믿어버린다. 사실은, 몸 상태가 반영된 해석일 뿐인데. 그래서 어떤 생각은 너무 그럴듯하고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정확해서가 아니라 — 이미 몸이 그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조세프 응우엔은 이렇게 말한다.
“너의 모든 생각을 믿지 말라.”
처음 들으면 가벼워 보일 수 있다.
“그냥 무시하라는 말 아니야?”
하지만 그의 말은 이런 태도가 아니다.
생각을 없애라
생각을 부정하라
생각과 싸워라
이게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삶의 기준, 출발점, 결론으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생각은 이렇게 확장된다.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그걸 사실로 믿는다
그 위에 또 생각이 올라간다
감정이 증폭된다
삶 전체가 그 방향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생각을 계속 따라가며 키우는 구조다. 응우엔이 제안하는 건 단순하다.
“지금 떠오른 건 단지 감정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뒤따라오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끊긴다. 억지로 참는 평정이 아니다. 생각이 스스로 힘을 잃는 자리다.
나도 가끔 이런 순간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우울이 밀려오고,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뒤덮을 때. 그럴 때 산책을 나가거나, 몸을 움직이며 운동을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렇게 느낀다.
“방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건 진짜 현실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 덩어리’였구나.”
몸이 이완되면, 그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는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는 되도록 빨리 몸을 풀어 준다.
걷기
햇빛 받기
가벼운 운동
잠깐 쉬기
생각을 고치려 하기보다, 몸의 상태를 바꿔서 생각이 지나가도록 둔다. 그 순간, 생각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이 지점에서 관찰자 모드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찰자 모드는, “지금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동일시하지 않는 자리” 생각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본다.
“아, 지금 불안이 올라오고 그 위에 이런 생각이 붙었구나.”
그리고 더 나아가면 투명 모드가 된다.
투명 모드에서는,
생각은 떠오르고
감정도 지나가지만
거기에 휘말리지 않는다
삶이 특별해지지 않아도, 훨씬 가벼워진다.
그래서,
없애지 않아도 되고
바꾸지 않아도 되고
통제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이렇게만 보자.
“이건 지금의 몸과 감정이 만들어낸 생각일 뿐.”
그때, 생각은 제자리를 찾고 삶은 생각보다 훨씬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