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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풍요는 자유를 만드는가?

진정 자유롭고 싶은 그대에게

요새 경제적 자유란 말이 유행이다.

경제적으로 돈을 충분히 벌어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다.


근데, 진정한 자유는 경제적 풍요로 달성될 수 있을까?


젊었을 때 차를 좋아했다. 거의 1년에 한 번씩 차를 바꿔가면서 차에 돈을 많이 썼다.


지금까지 탔던 차를 세보니 12대 정도가 된다.


지금은 1억이 넘는 독일차를 탄다.


차를 매번 더 비싼 것으로 바꿔가면서 자유를 느끼지 못했다. 더욱 큰 욕망에 대한 속박만 느꼈다.

벤츠와 BMW를 타게 되니 포르셰, 페라리를 타고 싶었고 롤스로이스, 벤틀리가 탐이 났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 끝이 나는가?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애초에 경제적 자유라는 개념이 잘 못 된 게 아닐까?


돈을 충분히 벌어 원하는 것을 사는 것으로 자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아마 포르셰, 페라리를 타고, 롤스 로이스, 벤틀리를 구입하면, 그다음은 개인 요트를 타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다음은 전용 비행기를 사고 싶을 것이다.


이것은 자유인가? 아님 속박인가?


지금은 차에 대한 욕심이나 욕망이 사라졌다. 사라진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차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직장 근처로 집을 옮겼고, 그러다 보니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만 타게 됐다. 차를 안 타니 차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됐다. 이제 차는 나에게 무가치하다. 그래서 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지인이 스타벅스 5만 원 커피 쿠폰을 선물로 줬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좋았을 것이다. 커피를 먹으러 유명하다는 카페를 찾아다녔고, 하루에 3~4잔의 커피를 마셨으니....


그러나 지금은 건강 때문에 커피를 끊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스타벅스 커피 쿠폰이 무의미하다.

커피에서 자유로운 나는 스타벅스 커피 쿠폰이 무가치하다. 나는 무가치하지만 이것을 가치 있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커피에서 자유로워줬다. 이제 커피는 나에게 무가치하다.


당뇨 때문에 많은 음식을 끊었다. 이제 맛집은 나에게 무가치하다. 음식은 나를 흥분시키거나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는 많은 것을 무가치하게 대하는 것이다. 무가치한 순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무주택자라면 집을 원할 것이다. 집이 1채가 되면, 2채를 살려고 할 것이고, 2채가 돼도 불안하여 3채를 살려고 할 것이다.


끝이 없는 욕망의 사슬이다.


집을 많이 가져야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집이라는 가치가 나에게 무가치해지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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