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전 기념 '타바' 동호회 자전거 국토 종주 참여
행사 전날 미리 전자식 기어도 충전하고, 바퀴에 바람도 넣고, 먹을 음식과 간식도 충분히 준비했다. 처음 장거리 그룹 라이딩이라 혹시 낙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이것저것 긴장하며 준비를 많이 했다.
토요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자전거에 물병 2개를 달고, 에너지바 4개, 바나나 3개, 영양젤,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에너지 음료도 챙겼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첫 열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공휴일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지하철 마지막칸에는 이미 자리가 없었다. 자전거를 대충 거치하고 2시간 가까운 양수역까지 열차를 탔다.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열차가 역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러 가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거의 20여 대의 자전거가 열차 마지막칸을 가득 채웠다.
라이딩족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질서 정연하게 자전거를 세웠다. 새벽에 그룹 라이딩 참여를 위해 결의를 가지고 열차에 탑승한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왠지 모르지만 대학생 시절 데모를 하러 갔던 버스가 생각났다.
고대 앞에서 우리는 신문지에 쇠파이프 여러 개를 말아 넣어 버스에 잔뜩 실고, 버스를 탔었다. 약간 긴장을 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시위장소에 도착하면, 버스 안에서 신문지를 펼치고 쇠파이프를 하나씩 들고 최루탄을 막기 위한 마스크를 쓴 채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현장의 최전선에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임무를 했다. 우리의 앞에는 방패를 든 전경들과 곤봉을 휘두르는 백골단, 최루탄을 쏘는 지랄탄차가 언제라도 달려들듯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위현장까지 가는 버스에서 긴장감을 가지며 쇠파이프를 보던 느낌과 그룹 라이딩을 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열차 안에서 수많은 자전거를 보는 느낌이 왠지 비슷했다.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시위 현장에 가는 사람들같이 공통의 목적과 연대감,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중에서 두 명은 타바 져지를 입었다. 타바 져지는 고대 자전거 동호회 공식 상의이다.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눈에 띈다. 타바 져지를 입은 분들은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모임에 처음 참여하여 양수역에서 타바져지를 받기로 해서 하얀색 티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지 두 정거정 전에서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에너지 음료와 바나나를 먹었다. 카페인은 헬스장에서 PT를 받을 때 배웠는데 순간적으로 운동 효과를 높여 피곤하고 힘이 없을 때 섭취하면 좋다고 했다. 바나나는 라이딩에 가장 최적화된 에너지 공급원으로 알려져 있다.
목적지에서 도착해서 나는 그분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타바 멤버들이세요. 저는 93학번 000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들이었다. 나는 선배들께 미리 넉넉히 준비한 바나나를 드렸다. 그분들 뒤를 따라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선배가 사준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본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본대와 함께 나는 새로 받은 타바져지를 갈아입고 출발했다. 클릿 슈즈를 안 신은 나를 자린이로 여겼는지 앞에서 끌어주는 선배들은 수신호와 여러 위험을 미리 말해주면서 잘 이끌어줬다. 수십여 명이 함께하는 그룹 라이딩은 꽤 힘들었다.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갑자기 빨리 달려서 따라붙어야 했고, 브레이크를 잡아 감속도 많이 해야 했다. 내 페이스대로 원활하게 타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앞에 있는 사람과 약간이라도 간격이 벌어지면 뒤에 있는 사람이 내 자리로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처음 출발하던 위치보다 한 참 뒤로 이동해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자리를 안 뺏기려고 앞에 있는 사람을 바짝 따라가니 체력소모가 심했다. 특히 오르막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많이 주다 보니 다리 근육이 경련되며 쥐가 나려고도 했다.
잠실대교에 도착하자 모든 타바 회원들이 합류했다. 인원이 너무 많아 잠실대교에서 행주대교까지는 학번별로 타기로 했다. 93학번은 나 포함 3명밖에 없어서 우리는 맨 뒤에 가장 느린 MTB 여성 그룹들과 함께 출발했다. 먼저 출발한 그룹들은 10여 명씩 짝을 이루며 거리를 벌렸다.
잠실대교 북단에서 행주대교까지는 대략 30킬로 정도로 적당한 거리였다. 후미 그룹에서 천천히 가던 나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 정도면 짧은 거리인데, 전속력으로 달려볼까? 좋아! 레이스~'
'레이스'라는 말은 포커를 칠 때, 마지막에 외치는 승부의 말이다. 첫 번째 사람이 마지막 패를 보고 돈을 건다.
"10만 원"
두 번째 사람은 카드를 덥는다.
"난 죽었어"
세 번째 사람은 콜을 한다. 콜은 10만 원을 자기도 건다는 뜻이다.
드디어 내 차례, 난 상대방의 펼쳐진 카드를 보고 경우의 수와 확률을 계산하여 내가 이길 수 있는 정도를 순식간에 계산한다. 그리고 긴장하며 외친다.
"레이스~"
그리고 규칙대로 지금까지 쌓인 판돈의 절반을 건다.
"10만 받고, 50만 더"
반대 차선에서 이동하는 자전거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는 반대 차선으로 추월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4~5명을 앞지르고 기어를 한 단 올렸다. 다시 4~5명을 앞지르고 기어를 한 단 더 올린다. 10여 명 그룹을 제치고 난 또 달려 나갔다. 한참을 가니 또 다른 타바 그룹들이 보였다. 난 그 그룹들도 따돌렸다. 제일 후미에서 60여 명을 앞지르고 마지막 선두 그룹까지 오게 됐다. 이 그룹마저 따돌리고 맨 앞에 가면 선배들에게 혼날 것 같았다.
'함께 목표를 가지고 하는 라이딩인데, 혼자 레이싱하냐?'
앞에서 타고 계시는 83학번 선배의 목소리가 상상 속에 들렸다. 난 선두그룹은 앞지르지 않고 후미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빨간 옷의 위압적인 그룹 라이딩에 반대 차선에서 오는 라이더들은 우리를 경의에 차서 바라봤고, 일부는 화이팅을 외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고대 화이팅~"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주대교에서 잠시 쉬며 서로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70년대 학번부터 2010년대 학번까지 다양하게 참여했다. 중심학번은 80년대 학번이었다. 90년대 학번은 다 합쳐도 5~6명 밖에 없었다. 다행히 93학번 밑에 후배들이 몇 명 있어서 우리는 음료수 심부름이나 잔 심부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이가 50이지만 고학번 선배들을 만나면 대학교 새내기때와 같은 긴장감과 어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버스를 타도 고등학생과 같은 마음에 함부로 의자에 앉지 못한다.
'나도 나이가 많아. 이제는 눈치 안 보고 편이 앉아도 돼'
이런 마음으로 의자에 앉지만, 고등학교 때 눈치 보며 자리에 않던 불편함 그대로의 마음이 느껴진다.
행주대교부터는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아 우리는 대열을 정비하고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거대한 대열이 1열로 이동하며 서로에게 위험들을 전달하는 모습은 흡사 군대 행렬과 유사했다.
맨 앞에는 선발대 한 명이 빠르게 가며 이동할 길에 문제가 있는지 살핀다. 선발대 바로 밑에 선두 그룹이 이동하며 각종 위협을 알린다.
"봉~, 홀~, 추월~, 앞에 차~, 서행~"
일정 부분 이동한 후에는 멈춰서 후미 그룹을 확인하고 대열을 정비해서 다시 이동한다.
드디어 고양 체육관이 보이기 시작했고,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다. 우리는 마지막 힘을 짜내며 달렸고,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고양 체육관 근처에서부터는 인도에서 차도로 나와 달렸고 경찰이 차량들을 통제해 줬다. 순식간에 자전거 대열이 6차선 차도를 가득 채웠고 우리는 해방감을 느끼며 잘 닦여진 차도를 달려 고양 체육관에 입성했다.
흡사 이 느낌은 대학시절 시위를 하기 위해 인도에 흩어져 있다가, 누군가 도로 한복판으로 나가 구호를 외치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도로를 점령하며 시위를 했던 느낌과 비슷했다.
고양 체육관 뙤약볕 아래에서 우리는 자전거를 세우고 햄버거와 음료수로 가볍게 점심을 때웠다. 대부분 40~60대인 사람들이 그늘도 없는 자리에서, 서서 위태롭게 한 손에는 햄버거를 한 손에는 콜라를 들고 먹는 모습을 상상해 봐라.
럭비 경기 하프 타임 때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체육관 안으로 행진을 했다. 나와 동기는 둘이서 플래카드를 들고 맨 앞에서 행진을 이끌었다. 93학번이 입학 30주년이라고 93학번이 맨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경기장 안은 열기가 뜨거웠다. 대학 졸업하고 이런 행사는 처음 참여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 아이들에게도 이런 느낌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자전거 모임 정기행사가 모두 마무리된 후, 나는 집에 들러 대충 씻고 중학생인 딸들을 데리고 다시 경기장을 찾았다.
딸들도 내가 느꼈던 벅찬 감정과 함성을 느꼈던 것 같았다.
현장에서 응원하는 것 보는 것도 좋았고 축구 경기 골 넣는 것 보는 것도 좋았다고 했다. 심지어 둘째 딸은 응원단의 모습을 보고 같이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고 응원도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저기 저 사람은 연예인 같아"
"저기 응원하는 사람들 아빠 동기들이야. 다 아빠랑 동갑이야"
"정말? 다 젊어 보이는데?"
"그리고 네가 말한 저 얼굴 조그만 아줌마는 실제 연예인이었어. 미스코리아 출신 '한성주' 아줌마야"
"미스코리아가 뭐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사람을 뽑는 행사인데, 거기서 '진'으로 뽑혔어. '진'이 1등이거든. 대단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