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게 적을수록 부족함도 줄어든다.”
— 요한 크라우네스, 《사소한 불행에 인생을 내어주지 마라》
요한 크라우네스의 책에는 한 나그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길을 걷던 나그네는 해 질 무렵, 쉼터를 찾다가 마디마디 뒤틀린 고목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 나무 아래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 조용하고 아늑한 자리였습니다.
그곳에 앉은 나그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원한 물 한 모금만 있으면 좋을 텐데.’
순간, 그의 눈앞에 맑은 샘물이 담긴 유리병이 나타납니다.
놀란 나그네는 다시 생각합니다.
‘든든한 밥 한 끼가 있었으면…’
곧바로 진수성찬이 차려진 상이 그의 앞에 놓입니다.
원하자마자 이루어지는 일들.
의자도, 음악도, 샹들리에 불빛도, 심지어 포근한 침대까지…
그는 점점 더 편안해지고,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무심코 떠올린 한 생각.
‘지금 맹수가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납니다.
아마도, 그 나그네는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관계 속에서, 삶 속에서 처음엔 작은 것으로도 충분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됩니다.
“이 정도는 해주겠지.”
“이 말쯤은 알아들어야지.”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 그만큼 실망도 커집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종종 그 바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해지지 않은 기대는 오해를 낳고,
오해는 마음의 틈을 만듭니다.
기대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기대를 솔직하게 말하고,
서로의 속도를 맞추려는 노력이 따를 때
비로소 관계는 건강해집니다.
바라기보다 이해하려고 하고,
실망하기보다 공감하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같이’ 걸을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덜 바라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도 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은 신들의 특권이고,
적게 바라는 것은 신과 닮은 인간의 특권이다.
— 디오게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