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책가방의 무게는 비려한다.
고3인 딸이 공부를 마치고 집에 들어섰습니다.
어깨에 멘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습니다.
호기심에 들어보았더니,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가방이 왜 이렇게 무겁니?”
딸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3의 불안과 책가방의 무게는 비례하는 거야.
그 말이 자꾸 마음속을 맴돌았습니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어쩌면 저도, 불안이라는 이름의 짐을 한가득 메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고통을 미리 당하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불안해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을 일이 갑자기 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루하루,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자꾸 현재가 아닌
미래로 달려갑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마음을 빼앗기며
불안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스토아 학파는
이런 불안을 다루는 지혜를 건넵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조언입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는데 날씨가 흐리다면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런 날씨 속에서도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고
계획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그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은
제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딸에게 해주면
“아빠, 또 중2병 같은 말 하네” 하며 웃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열심히 나아가는 딸의 모습이
참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딸의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던 하루.
그 무게만큼이나 저도 모르게 짊어진
마음의 짐을 조심스레 내려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