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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무엇을 짓고 있는가

21년차 직장인의 고민과 성찰

by 민수석

“”

대학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휴대폰 개발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통화 품질을 개선하는 테스트였습니다.


신호가 약한 지역, 안테나가 한 칸도 뜨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며

우리 폰과 경쟁사의 수신률을 비교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위험한 상황에서 지하에 갇혔을 때,

그 사람이 내가 개발한 휴대폰을 쓰고 있다면,

내가 개선한 통화 품질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겠지.”


그때의 저는 일을 소명으로 믿는 엔지니어였습니다.

눈빛은 반짝였고, 하루하루가 의미로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회사 안의 현실, 일정, 보고, 평가가 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통화 품질은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출시 일정 안에 끝내야 하는 과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더 시간이 흐르자,

그 일은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느껴졌습니다.

반짝이던 눈빛은 흐릿해지고,

일은 그저 하루를 버티는 행위가 되어갔습니다.


그때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세 명의 석공 이야기를요.


어느 날, 한 나그네가 건축 현장에서 세 명의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석공은 말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돌을 자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석공은 대답했습니다.

“이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 벽을 쌓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석공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내가 다루는 이 돌 하나하나가 그 위대한 건물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나그네는 그 대답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평범한 노동도,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사명이 된다는 것을요.


어느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죽을 결심으로 한강 다리로 가던 중,

작가님의 글을 읽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작가는

‘생계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에서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정신승리 오지네요.”


그렇지만 저는 이런 정신승리야말로 삶의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누군가의 생명을,

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정신승리가 아니라 진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생활 21년 차가 된 지금,

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짓고 있는가.”


소명을 가지고 일하던 신입 시절의 직업인에서

그저 생계를 위해 영혼 없이 일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다시 직업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성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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