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키는 힘

by 민수석

조금 늦게 눈이 떠진 아침이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동네 트랙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인지 평소보다 사람이 적게 느껴졌습니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문득 생각났습니다.


“아, 오늘이 추석이구나.”


딸이 고3이라 어디 가지도 못했고,

그저 평소처럼 운동을 나온 아침이었습니다.

명절이라기보다는 그저 하루의 연장선 같았습니다.

날짜 감각이 무뎌진 건, 아마 일상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적엔 특별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설날엔 세뱃돈, 생일엔 선물, 추석엔 송편, 크리스마스엔 트리.

그 시절의 나는 그런 날들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날이 와야 비로소 ‘나에게도 특별한 일이 생길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습니다.

진짜 특별한 건, ‘특별한 날’이 아니라

지루할 만큼 평범한 하루를 묵묵히 이어가는 힘이라는 걸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조금 무겁더라도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것.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는 것.

그 단순한 반복들이 나를 흔들림 없이 지탱해 줍니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뻔한 하루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나는 중심을 찾습니다.

일상의 리듬은 나를 단련시키고,

그 리듬 위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삶의 기쁨은 거창한 이벤트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작은 루틴이 쌓여 의미가 되고,

그 의미가 다시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달리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특별함을 쫓기보다 평범함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기술이라는 것을요.


내일도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트랙을 돌 것입니다.

그게 나의 방식으로 하루를 지켜내는 일,

그리고 나를 지켜내는 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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