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서울 자가에 사는 김부장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25년간 ‘형, 동생’으로 지내온 상무와 김부장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대화 속에서 유독 거슬렸던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김부장이 반복해서 부르는 “형”이라는 호칭이었습니다.
“형, 그러지 마요. 형이 내가 어떻게 일해왔는지 제일 잘 알잖아요.”
“형, 나 아직 쓸모 있는 놈이에요.”
“어떻게 형이 나한테 이래요?”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25년 동안 상사와 동생처럼 지냈던 관계가, 인사 한 통으로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형’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 대사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말을 놓지 않습니다.
상대가 저보다 열 살, 스무 살 어리더라도 끝까지 존댓말을 씁니다.
처음에는 그게 저만 유난스러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합니다.
회사는 친목모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관계는 ‘좋은 사람’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중요합니다.
업무로 연결된 관계는 언제든 이해관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친밀함이 경계선을 허물면, 언젠가 그 경계가 저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거리를 둡니다.
존댓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이용당하고 버려졌습니다.
성과가 떨어지면 내쳐지고, 권력에 순응하지 않으면 눈 밖에 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해고를 당하던 날, 회사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통보만 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던 조직이었지만, 본사는 숫자 하나로 모든 노력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회사라는 곳은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킵니다.
존댓말은 거리의 표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정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고생한 동료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술 한 잔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일 뿐이라는 사실을요.
회사는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존재를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존댓말로 시작해 존중으로 마무리되는 태도,
그것이 제가 회사에서 나를 지키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