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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l 31. 2022

나는 스타벅스를 미워하지 않는다.


0. 들어가는 글


나는 스타벅스에서 일하지 않는다. 신세계 계열사에 있어본 적도 없다.

친인척 중에도 없다. 그저 다른 기업에서 실무자로 일해본 사람으로서, 소비자로서 이 글을 적는다.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믿거나 말거나다.






1. 오랜만의 프리퀀시


요새 많이 바빴다.


스타벅스를 알게 된 초기에는 프리퀀시마다 다 일일이 모아서 교환받고,

이번에는 무슨 상품이 새로 나올까 설레기도 했다.


예전에 2020년 서머 레디백 이후로는 스타벅스에 자주 가지도 않았고,

관심이 없기도 했다.


마침 미팅 차 만난 제휴사 직원이 자기는 다 모았는데 나도 모아 보지 않겠냐며 프리퀀시를 몇 개 나눠주었다.


그렇게 되니 몇 잔 안 남기도 했고, 여기저기 물어보니 꽤나 남는 프리퀀시가 많길래

거의 막차 타듯이 시간에 쫓겨 이번 문제가 된 서머 캐리백 2개를 얻게 되었다.







2. 사건의 발단


냄새가 좀 이상하긴 했다. 화학약품 냄새라고 할까?

받아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 것이다.


별생각 없긴 했지만, 약간 불안해서 계속 안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사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06113


요약을 하자면, 이번에 나눠준 캐리백에서 인체 유해물질인 '폼알데하이드'  (과거 포름알데하이드라 불렸던 것)가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스타벅스 측이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FITI시험연구원 재직자가 '블라인드'에 올린 글이 시초가 되어서

여기저기 폼알데하이드 측정 인증글이 올라온 것 같은데


사건의 발단이든 확산이든 나한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3. 그냥 내 생각


나는 두 번의 창업, 한 번의 코스닥 상장사, 두 번의 대기업에서 재직한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본사의 정책으로 지점의 사은품이나 상품 정책을 결정해본 적이 다수 있다.

(여기서 지점은 지사, 영업점, 대리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으시면 된다.)


나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실무자로서 스타벅스 담당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대략 스타벅스 담당자가 해야 하는 일을 살펴보자.

물론 각 업무에 대한 담당자나 팀은 다 다를 수 있으나 아무리 양보해봐도 많은 인원이 핸들링하지는 않을 것 같다.


 1. 사은품 선정을 한다.

  - 과거와는 다르면서, 히트할만한 상품과 디자인을 뽑아내야 한다. 스타벅스라고 해서 내놓은 것들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별로인 상품이 나오면 네이버 블로그에는 '이번 상품은 별로네요~'라는 글이 도배가 된다. 전 담당자가 했던 것보다 혹은 예전에 자기 자신이 했던 것보다 상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으면 팀장이나 윗선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된다. 꼭 윗선이 아니라도 같은 팀 내에서도 안 좋은 평가가 있었다 공유될 것이다. 그래서 여름 시즌에 맞춰서 적당한 비용을 지출할 수 있으면서 괜찮은 디자인인 캐리백을 선정했을 것이다.


 2. 생산 관련 계약을 한다.

  -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 하지만, 직접 계약을 했는지 중간 발주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도 엄청난 대량 생산과 물류이동이 필요한 것이므로 관련 계약을 진행했을 것이다. 생산된 제품의 샘플을 받아보고, 그 샘플에 대해서 퀄리티를 적당히 타협했을 것이고, 몇 개를 언제까지 맞춰서 생산해야 한다는 날짜와 약속 물량이 있었을 것이다.


 3. 타이밍에 맞춰 마케팅을 준비한다.

 - 이렇게 주기적으로 프로모션을 준비하는 회사는 캘린더에 대략적으로 언제부터 마케팅 페이지를 올려야 할지(퍼블리싱), 언제까지 앱 내부 개발과 디자인이 나와야 할지가 죽 적혀있다. 하루 이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담당자들 간에 공유가 될 것이고, 그에 맞춰서 움직여서 개발했을 것이다. 해당 페이지가 완성되면 실사랑은 맞는지, 사진이 잘 들어갔는지 담당자가 테스트를 해볼 것이고 그것이 문제가 없으면 운영 서버에 등재될 것이다.


 4. 각 지점에 물류 이동을 신경 쓴다.

 - 예전에 선착순으로 가져가던 것에서 예약제로 바뀐 이후로, 각 지점에 할당된 물건을 잘 보내야 할 것이다. 스타벅스는 전부 직영점이기 때문에 각 지역별, 지점별로 가야 할 수량에 대해서 꼼꼼하게 체크하고 불량품은 있었는지, POS기기와 연동은 잘되었는지, 어제는 몇 개가 나갔는지 등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담당자는 크게 나눈 이 네 가지 업무를 적어도 연 중에 몇 번은 반복해서 했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 모든 과정을 본인이 해본다고 생각하자.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것들을 하는 팀들이 나뉘어 있을 수도 있지만 많은 인원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이런 여러 프로모션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가방에 대한 안전문제는 신경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안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프로모션을 멈출 정도로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스타벅스 측에서 해명한 것처럼

'외투나 침구류는 안전 기준이 있지만, 가방은 몸에 직접 닿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일을 한다고 대입을 해봐도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프로세스를, '폼알데하이드가 검출' 되었다고 담당자가 전체를 취소하고, 계약을 물리며, 생산된 물량을 폐기할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샘플을 받는 과정에서 안전성 검사를 받아 들고 대량 생산을 하지 말았어야지!"

라고 이야기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따로 기준이 없는 일까지 담당자가 일일이 규제를 찾아서 걸러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보통 이런 일은 중간 발주사나 제휴사가 정부의 규제 기준으로 필터링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계약서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의 책임 소지와 문제사항을 적시해두는 것이다.


그게 대기업이 본래 일하는 방식이다.


정말 그렇게 모든 사은품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콘퍼런스나 고객 사은품으로 나오는 에코백과 텀블러, 각종 미니 선풍기 등에 대한 모든 규제를 살펴보고 전수조사를 해보자.

그중에는 화학 약품이 농후한 가방,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플라스틱, 터질 수 있는 배터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대기업 직원들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일 할 수가 없다. 


담당자 한 명이나 단일팀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법이고,

회사에서는 그에 대한 규정 준수 확인을 위해 충분한 여유 인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이 대참사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스타벅스를 크게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스타벅스 담당자가 일부러 가방에 폼알데하이드를 마구 넣으며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고객들과 그 자녀의 미래를 짓밟기 위해 일을 강제로 진행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프로모션을 진행했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나는 오늘 6장의 쿠폰을 교환받으며

"일은 본사에서 만들었는데, 고생은 현장 직원분들이 하시네요..^^"라고 살갑게 대화를 꺼냈다.


그 말에 직원 분은

"저희가 나눠드리고 저희가 다시 수거하고 있네요.. 하하;"라고 웃으며 응대해주셨다.


예전 리유저블 컵 사태와 같이 현장에 있는 직원분들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의하고 싶다면


 그건 그렇고. 이건 이거다.


담당자의 실수야 어쨌든 유해물질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고,

열심히 모은 프리퀀시에 대한 보상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제안을 드린다.


 1. 소송하시라.

  - 세상은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에 대한 피해를 입었으면 보상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민사소송을 준비하시라.


 2. 담당자를 형사 고발하라.

  - 한낱 기업 직원이 우리 가족에게 유해물질을 던져주었다. 이것은 고의성이 짙어 보이므로 담당자를 형사 고발하시라.


 3. 정부에 관련 기준을 수립하도록 요청하라.

  - 사실 위의 2개는 조금 강하게 말한 것이고,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게 중요해 보인다. 모든 제품에 인체 유해 물질의 기준이 있었다면 애초에 사은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걸러졌을 것이다. 이렇게 기준이 있는 것들은 필터링되기 마련이다. 애초에 샘플링하는 과정에서 검사 후 수입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 만약에 계약 이후에 수입단계에서 해당 물질이 검출되었다면? 이것은 발주사에서도 제조를 담당하는 회사의 과실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으며 해당 제조사는 다음 계약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것이 시장이 움직이는 프로세스다.


 4. 관련 기업 처벌법을 제정 요청하라.

  -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해 보이는 것 중 하나다. 담당자가 좀 더 꼼꼼하게 일할 수 있게 하려면,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에게 요청하시라. 이에 대한 토론은 무궁무진하게 많으므로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고 의견을 내면 될 것이다.


 5. 이런 것들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에 후원하시라.

  - 이런 것들이 꼭 스타벅스 사례에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살면서 이런 것들만 시퍼렇게 모니터링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을 지지하고 후원해주시라.







5. 글을 맺으며.


나는 새 가방과 3만 원 쿠폰 중에 정하라는 지침이 나오기 전에

커피 쿠폰 3장으로 교환해준다는 것에도 만족했다.


처음에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되었다고 했을 때도 교환하지 않고 공식 발표를 기다렸다.


나는 얌전히 스타벅스 자체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별로 화가 나지도 않았다.

애초에 나는 프리퀀시를 통한 사은품은 '덤'이지

그것을 목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목적으로 열심히 마셨는데 화학약품이 검출되는 쓰레기를 받았다는 생각에

약간의 화를 넘어 극도의 분노에 이르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위와 함께 올라온 사과문과 보상안이 나왔는데

그것이 마음에 안 들면 분노에 이르는 만큼 액션을 취하는 것이 좋다.


대기업은 당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사실 그 누구도 그렇다.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지, 완벽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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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의 사과문 전문 캡처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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