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아니 니 인생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이 무슨 직업을 하면 좋겠다는 다 있는데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어떤 성생활을 하면 좋겠다 그런 건 없어요. 부모님이 가진 성에 대한 관념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반강제적으로라도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어떤 식으로도 부정적인 관념을 줘서는 안 됩니다."
- 구성애, < EBS 육아학교 - 어린 나이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
"저는 어린 자녀들을 가지고 계신 부모님께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뭐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 경찰 아저씨 부른다!라고 하시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경찰을 부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쌓이죠. 경찰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야지 아이가 잘못했을 때 와서 잡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올바른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교육시켜주셨으면 해요."
- 어떤 경찰 분의 인터뷰 내용
나는 꽤 어린 나이부터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또래 사람들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꽤 확신했다. 내가 배우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회 전반적으로도 옳은 것이고 의학적으로도 정확한 지식이라고. 어디서 그런 확신이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보다도 훨씬 전의 이야기니까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꽤 확신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쯤에 그 생각이 철저하게 박살 났다. 나는 그때까지 여성의 질이 막혀있다가 사춘기 시절이 지나면 생리와 함께 뚫리는 줄 알았다. 홀리 쉣! 세상에 이런 무지한 놈이 다 있나. 그전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연한 계기에 여성은 원래 질 구멍이 뚫려있는 상태로 태어나고 생리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렇다 치자. 그걸 그렇게나 늦게 알았다니 바보 같았다고도 치자. 그러면 나보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더 나을까? 나는 최근까지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을 것 같다고? 그런 사람들이 성에 관심이 없거나 저학력자일까? 반대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면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내 첫 경험은 빠른 것도 아니었고 느린 편도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그 날이 생생하다. 보통 사람들에게 첫 경험은 최악이거나 빨리 잊는 것이라던데 나는 왜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인지. 물론 과정 전체가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다는 것은 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첫 경험은 삽입 섹스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하면 나는 내 첫 경험을 거절했다. 살면서 한 번도 섹스 경험이 없었고, 섹스란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실수하는 순간 인생을 조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평생 살아왔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여성분이 피임을 원하지 않았다. 생이라니. 콘돔도 없는 생짜배기 섹스라니.
그 후에는 어쩌다가 안전한 첫 경험을 보냈고, 왜 그 날 피임 없는 섹스를 원했냐고 물어보니 안전한 날이었다고 대답했다. 자연피임법을 별로 믿지 않는 나로서는 지금까지도 그 날만 생각하면 몸이 부르르 떨리고 소름 돋을 만큼 끔찍하다.
내게 첫 연애는 많이 안 좋게 끝난 터라 가끔씩 안주 삼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러워하는 남자들이 있다.
"콘돔 없는 섹스라. 나 같으면 몇 번이라도 더 했을 텐데 말이야. 그 아까운 기회를 그냥 보내다니 멍청한 놈."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게요." 하며 대화를 넘기곤 한다.
생각 없는 놈들
굳이 나보고 여성을 볼 때 무엇을 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학력 수준을 본다. 명문대 그런 거 말고 학력 수준. 내가 말하는 학력 수준은 정확히 말하자면 학점에 가깝다. 내 이상형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살아온 반평생이 학생인 내가 자기 일이라고 해봤자 공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전 여자친구들은 역대로 다들 공부를 잘했다. 과탑이어서 성적 우수상을 탔다거나 하는 것들은 거의 매 학기 방학에는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내게 피임에 대한 실망감을 줄 때가 많았다.
물론 학점이 좋은 것과 피임을 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 하더라도, 대충 같은 선에서 봤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보통 축구를 잘하면 농구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콘돔 없이 한 번만 삽입해보면 안 돼?"라는 부탁 아닌 권유는 정말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안돼. 나는 피임 없이 절대로 섹스 안 해. 차라리 안 하면 안 했지 위험한 섹스는 안 해. 이게 나를 위해서도 하는 일이지만 너를 위한 일이야. 잘못해서 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밖에다가 하면 되잖아. 그럼 그냥 한 번만 넣었다가 빼자. 그럼 임신 안 하겠지?"
나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동시에 온갖 생각들이 들었다. 피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는 걸까. 아니면 콘돔 없이 질외사정을 하면 안전하다고 누군가 가르쳐준 것은 아닐까. 혹여나 과거에 우연히 임신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진짜로 먹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나한테 피임 없는 섹스를 요구할까?
내가 내 성행위에 대해서 절대로는 깰 수 없는 마지막 선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지 그게 뭐 대수야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지금 아이의 출산 예정일을 받아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니 아메리카노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지금도 그렇게나 똑똑한 여성이 나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는 것이 꽤나 끔찍하다.
그래도 그 전의 여자친구는 나은 편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고려해서 지금까지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난다. 그녀는 내가 첫 경험 상대였다. 남자를 상대로 첫 경험을 치르는 여성의 마음이 얼마나 두려울지 나는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그녀는 나를 첫 경험의 상대로 확신하고 있었다. 나도 처음인 사람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서툴렀다 보니 그녀에게는 아픈 첫 경험을 힘겹게 같이 보냈다.
그 후에 몇 번의 관계를 가지며 그녀도 즐길 수 있는 몸 상태와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첫 경험 때 어땠냐고 물어봤을 때는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백 번 정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며 대답했을 때는, 이 사람이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몇 번의 경험을 거쳤을 때, 그녀는 콘돔이 고무 느낌이 난다며 피임약에 대해서 알아봤다. 그리고 내게 약을 복용할 테니 콘돔 없이 하는 것은 어떻냐고 물어봤고 나는 며칠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그녀도 처음이지만 나 또한 경구 피임약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무했기에 함께 공부하면서 복용을 도왔다. 약을 복용할 시간을 잊을 것 같으면 내가 대신 알려주기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피임에 있어서 양보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을 계기로 그녀에게 더 확신을 갖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그려왔던 완벽한 연애는 이런 거였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헤어졌다.
피임은 자기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연애에 앞서 서로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태도였다.
사고 쳐서 빨리 결혼하는 것이 인생을 조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내가 된다면 확실히 조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과속을 하게 된다면? 으. 정말 너무나도 끔찍하다. 계획된 임신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조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날부터. 자연피임법, 콘돔, 페미돔, 먹는 약, 삽입하는 약, 루프 등등 올바른 피임법을 공부하고 내 인생과 사랑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것들을 다 미리 알아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다음 세대에게 잘 전달해줬으면 한다. 그게 아들이 되었든 딸이 되었든 성인이 되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성 경험을 하게 될 테니 최후의 보루로서 인생은 망치지 않도록 말이다.
빠른 시간 안에 읽어볼 만한 것은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 피임법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7589&cid=51007&categoryId=51007
그리고 그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구성애 선생님의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다. 성교육이라는 것이 피임법도 포함하지만 남녀 둘 다를 이해하는 것도 포함되기에 생각보다 보고 느낄 만한 것이 많다.
물론 영상을 보다 보면 내 생각과 약간 다른 가치관을 접하기도 하는데 (특히 남성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런 의견이야 본인이 알아서 잘 생각하며 거르면 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떤 책임은 며칠, 몇 개월이면 끝나지만 어떤 책임은 평생에 거쳐 끝내야 하는 것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육아가 아닐까 싶다. 연애와 결혼이야 헤어지고 이혼하면 된다고 해도 내가 낳은 새 생명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제대로 된 성인이 아닐까 싶다. (*1)
나는 아직까지 그런 책임을 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당분간은 그러고 싶지도 않고. 어떤 섹스를 할 것인가.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며 내 자유를 이행할 것인가. 덤덤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하루 술 마시고 친구들한테 굴욕을 당할 행동을 하거나 말실수를 하는 정도의 실수'가 아니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많은가?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그리고 결혼을 조금은 뒤로 미루고 싶거나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공부하자. 열심히 배워서 열심히 써먹자. (*2)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 (keyword : 섹스)
(*1) 비슷한 예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2) 프랑스는 정식 결혼한 커플보다 사생아 비율이 높다. 그렇다고 책임을 회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참고할만한 글 :
Birth Control Method and Options :
https://www.plannedparenthood.org/learn/birth-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