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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Sep 18. 2020

해외이사, 우리처럼 하지 마세요.

어설퍼도, 미국살이.

 출국날짜를 한달 앞당겨 3월18일에 출국하기로 결정된 것이 3월2일, 대략 2주 이내에 한국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차는 중고차업자에게 겁나 후려침을 당하면서 팔아치웠고, 집은 이미 4월중순 출국을 전제로 계약이 된 상태였으므로 가까운 지인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4월첫주에 퇴사하기로 다 이야기 되어있었던 직장에 "정말 죄송하지만 코로나사태로 미국입국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판단때문에 한달 앞당겨 출국하기로 했습니다. 해서, 저 이번주까지만 근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안되는 통보를 했다. 정말 다행인것은 팀장님께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 주셨고, 천만다행으로 이미 후임이 출근을 하기 시작했으므로 인수인계만 잘 해주고 잘 마무리하자는 부탁으로 답변해주셨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이미 2주째 방학을 맞이하고 있었다. 코로나사태로 등원날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등원날이 올 때까지 짐싸기를 미룰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하루종일 돌보면서 짐을 싸는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다. 다행이라면 남편도 스케쥴이 잘 정리되어 온전히 함께 짐정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짐을 부치기 위해서 몇가지 선택사항이 있었다. 첫째, 비행기로 부칠것인가, 배로 부칠것인가.

 비행기는 빠르지만 비싸고, 배는 저렴하지만 두달가량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보통 남편이 두세달 먼저 미국으로 출국하면 그때 짐을 꾸려서 배편으로 부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으로 늦게 입국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우리처럼 다같이 급히 들어가는 분들은 그러면 다 비행기로 부치는가 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늦게 도착해도 무방한 대부분의 짐들을 배편으로 부치고, 미국에 들어가면 당장 사용해야 할 물건들을 최대한 출국하는 비행기 편에 화물로 부치는 케이스가 많았다. 우리가 타고갈 아시아나항공은 인당 2개의 짐을 개당 23Kg까지 허용하고 우리는 세가족이니 23Kg x6 이고, 이만하면 가자마자 사용할 물건들을 어느정도 가져갈 만 하다고 판단되어 우리도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둘째, 배편으로 부치는 짐은 어떤 방식으로 부칠것인가? 크게 3가지 방법이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한진해운의 해외이사, 한진해운의 드림백, 우체국 선편EMS.

 우리는 결혼할 때 구입한 가구들이 10년가까운 세월동안 많이 험해져서 비싼돈을 들여 굳이 미국까지 모셔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건들과 책, 옷, 장난감, 주방기구들 정도를 꾸리면 되는 거였다. 한진의 해외이사 써비스는 1m x 1m x 3m에 대략 120만원부터 시작한다는데 왠지 짐을 꾸리기에는 적은 부피에 비용이 비싸게 다가왔다. 가구를 안부칠건데 무슨 이사써비스를 이용하나, 그런 생각이 컸다. 이것은 우리가 백번천번 잘못 판단한것이었다. 급한 의사결정은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다.

 


드림백을 사용 후 보관해두면 다음번 사용시 돈을 아낄 수 있다.

 드림백은 이민가방 싸이즈의 가방을 택배처럼 배송해주는 써비스이다. 한진해운 싸이트에 들어가서 몇개의 가방을 신청하고 개당 14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 가방이 집으로 도착한다. 그 가방에다가 짐을 꾸린 다음에 기사님을 불러서 짐을 부치고 발송비용을 지불하면 기사님이 짐을 수거해간다.

마지막 우체국박스를 부치는데 49,000원이 들었다.

 우체국 선편EMS는 우리가 잘 아는 택배서비스의 해외버젼이라고 보면 된다. 박스를 사다가 짐을 싸서 우체국창구에 가져가 접수해야 한다. 박스도 크기제한이 있기 때문에 우체국에서 5호 이하의 크기로 구입하는것이 좋다.


 이렇게 둘 다 잘 알고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우리는 드림백과 우체국EMS를 모두 선택했다. 우체국EMS로 책들을 부치고, 나머지 물건들을 드림백으로 부치기로 했다. 그것은 순전히 인터넷에서 읽은 앞서 미국으로 짐을 부쳐보았다는 블로거의 글 때문이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블로거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 진리라고 믿고싶었다. 2주뒤에 우리는 출국이었다. 선배님 말을 닥치고 따르기로 결정했다.

 

 정말 바보같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책은 매우 무거운 짐에 속하는데, 우리는 책을 우체국EMS로 부치고 있었다. 우체국에서 박스를 사다가 집에 가지고 오는것도 보통일이 아니건만, 거기에 더해서 짐을 직접 날라다가 직접 창구에 접수를 해야 했다. 워낙 책이 많아 그 과정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기사님이 수거해가는 드림백을 넉넉하게 10개쯤 신청할 걸 그랬다고 넋두리를 하릴없이 흘려댔다. 그냥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 미국에 가져가지 않기로 한 물건들을 중고매장에 갖다 팔거나 누구에게 쓰라고 챙겨줄 신경을 쓸 시간이 없어서 죄다 갖다 버렸고, 그나마도 갖다 버리는 시간마저 아까워 발을 동동 굴러댔다.


  책, 아이의 짐, 주방짐, 옷과 가방, 나머지 잡동사니, 이렇게 구분해서 리스트를 작성하며 짐을 정리했다. 정확히 말하면 버릴것과 가져갈 것을 일일이 구분하고 가져가기로 한 것을 드림백이나 우체국박스에 꾸렸다. 우리는 드림백3개를 신청했었는데 그렇게 큰 가방도 턱없이 부족한 부피라는 것을 짐을 꾸리다가 알았고, 그런데 드림백을 추가로 신청하기엔 시간이 많이 부족했고, 결국 우체국EMS를 몇번 더 추가해서 부쳐야 했다. 드림백 기사님도 부르면 뿅 오시는 줄 알았던 우리는 정말 바보였다. 짐 싸놓고 전화해보니 우리 출국날에나 스케쥴이 되신다는 것을 제발 와주십사 사정사정 해서 출국 이틀전에 겨우겨우 부칠 수 있었다. 바보같은 나에게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하고 버라이어티했다.

 그렇게 드림백3개, 우체국박스14개의 짐을 직접 꾸리면서 우리는 탄식했다. 첫째, 1m X 1m X 3m의 부피는 생각보다 넉넉하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 누가 와서 짐을 꾸려준다는 것이 우리의 시간과 수고를 얼마나 덜어주는 것인지 알았다(시간에 쫓기며 짐싸는것이 죽을듯 힘들었다). 셋째, 이미 해외이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이상의 돈이 드림백과 우체국EMS를 이용하는데 들었다. 그것도 우리의 출퇴근 없는 하염없는 노동을 비용으로 환산하여 포함하지도 않은 것이니 더욱 많은것을 지불해버린 것 처럼 느껴졌다. 아, 내 아까운 시간과 체력!!! 코로나사태로 사회적거리두기를 반드시 지켜야하는 분위기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시간이 체력이 부족해서 양가 부모님과도 전혀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친구들 친지들과는 말할것 도 없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한걸까? 출국 전날 남편과 나는 체력과 멘탈이 털려버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해외이사 서비스를 이용했어야 했는데!"라고 백번 쯤 읊조렸다.


 정확히 3월16일에 드림백을 발송했고, 17일에 마지막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못한 짐을 급히 꾸린 박스하나를 우체국EMS로 부쳤다. 미국에서 당장 사용할 물건을 추려서 트렁크에 넣는 과정도 어마어마했다. 정말 코로나사태로 인해 미국에 가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냥 미국가서 사다쓰자며 다 버리고 출국했을지도 모를일이다.


 두달이 지난 지금 후기를 덧붙이자면, 드림백은 4월20일에 미국에 우리가 살고있는 집으로 배달되었다. 우리가 부친 짐이 언제 선박에 선적되어 출항했는지, 언제 입항할 예정인지, 언제 집으로 배달될 예정인지 일정한 때가 되면 꼬박꼬박 이메일로 고지가 되어 불안함을 덜어주었다. 심지어 미국에 와서 뒤늦게 계약한 집주소를 현대해운측에 이메일로 알려줄 수 있는 타이밍이 주어졌고(입항직전 이메일로 혹시 변경되었다면 주소를 정확히 알려달라고 했다), 그 주소로 정확하게 배달되었다. 드림백 서비스는 매우만족이다.

출항시, 입항앞두고, 입항후, 배달 후 네차례 이메일이 왔다.

 우체국EMS는 깜깜 무소식이다. 혹시 어디로 잘못 배달된 것은 아닌지 불안불안하다. 여튼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아직 짐이 오지 않았고, 짐이 어디있는지 출발이나 한것인지 확인 할 길이 없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오늘쯤에는 한국으로 전화를 해볼 참이다.

 

 아무튼 현대해운 만세다. 다음에 또 해외이사를 할 일이 있다면 첫 경험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으리라 다짐해본다. (현대해운으로부터 어떤 금전적 지원이나 도움은 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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