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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Sep 24. 2020

코로나 와중에 아파트 구하기.

어설퍼도, 미국살이

 미국에 막 들어왔던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을 휩쓸기 시작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확진자수가 폭발했고, 미국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 우리의 계획은 남편의 친척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몇주 안에 아파트를 구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한국에서 오는 손님은 아무리 친척이라도 반가울 리 없었다. 결국 우리는 출국을 며칠 앞두고 에어비앤비에 접속해 2주간 머물 수 있는 작은 별채를 빌리게 되었다. 하루에 100불이 넘는 체류비가 너무 아까웠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산타애나에 있는 어떤 싱글하우스의 너른 뒷뜰에 지어진 세 개의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였다.


 미국에 들어가고 나서는 미국도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확진자 숫자는 다른 모든나라의 수를 합해도 모자랄 정도로 폭발했다. 모든 공공기관들은 문을 닫았고, 어지간한 오피스와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우리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난 다음날, 다른 모든 게트하우스에서 사람들이 서둘러 짐을 싸 들고 사라졌다. 우리가 산타애나에서의 2주동안 해야만 했던 일들 대부분이 곤란해졌다. 핸드폰은 온라인으로 어찌어찌 유심을 신청해서 개통했지만, SSN과 운전면허는 기다리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 2주 후 들어가야 할 집을 구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남편의 회사 동료가 최근에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원래 살던 아파트가 비어있는데, 정 갈곳이 없으면 그곳이라도 잠시 사용하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감사했지만, 집을 알아보는 일을 멈출수는 없었다.


 문제는 대강 이러했다. 첫째, 우리가 이사하려고 고려하는 동네는 학군이 좋아 선호되는 지역이라 그런지 렌트비가 비쌌다. 그건 감수하기로 한다. 둘째, 이사철이 아니라서 빈 집이 없었다. 그건 기도하기며 찾고 기다리기로 한다. 셋째, 빈 집이 나왔는데 코로나때문에 집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한다. 아, 보지도 못한 집을 계약할 베짱은 없는 것 같다. 넷째, 꽤 괜찮은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대단지의 아파트에 빈 유닛이 많고, 게다가 이 난리통에도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빈 유닛이 많은 아파트라니 혹시 문제가 많은 아파트일까봐 걱정스럽긴 했지만 일단 보러가기로 한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고 하니 1층유닛을 보여주었다. 관리자가 미리 가서 현관문을 열어놓고 사라지면 우리가 가서 들여다 보고 나오는 식이었다. 들어가보니 남향이기는 한데 이상하게 볕이 전혀 안들고 굴속에 들어간 것 마냥 너무 깜깜해서 불을 켜야만 앞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당 너머에 꽃나무가 무성해서 벌들이 집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 여기에서는 못살겠다. 더 생각해보고 연락을 주겠다 하고는 산타애나로 돌아왔다.


 꼼꼼쟁이 우리 남편이 인터넷으로 그 아파트의 리징오피스 싸이트를 찾아 들어가 비어있는 모든 유닛들 중에 이사날짜가 알맞은 유닛들을 모조리 찾아냈다. 똑같은 크기의 집인데 날짜와 위치에 따라 렌트비가 다 제각각이었다. 그 중에서 우리의 예산에 맞는 유닛들, 또 그중에 북향을 제외한 유닛들을 골라내었다. 그리고는 다시 차를 몰아서 아파트단지 어디에 위치한 집인지 일일이 체크하며 돌아다녔다. 주변의 소음정도는 어떤지, 창밖으로 무엇이 보일지, 일조량은 어떨지 등을 다 확인해나갔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적합한 마음에 쏙 드는 한 유닛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실창으로 밖을 바라보면 나무와 풀들이 가득한 작은 광장이 보이는 2층유닛이었다. 우리는 바로 리징오피스에 그 유닛을 렌트하고싶다고 말한 뒤 계약을 진행했다.


 미국에 갓 들어온 우리는 크레딧이 전혀 없기때문에 몇달치 렌트비를 한꺼번에 내거나 현지인의 코싸인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우리 남편의 보스가 기꺼이 코싸인을 해주셨다. 혹시라도 본인의 크레딧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는 민감한 일인데, 흔쾌히 도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 한두장짜리 계약서만 보아왔는데, 미국의 아파트 계약서는 페이지수가 어마어마했다. 이메일로 도착한 계약서를 눈알이 빠지도록 살펴보면서 하나 하나 싸인을 해나갔다. 계약서에는 집에 게스트를 몇명까지 들일 수 있는지, 쓰레기는 무슨 요일 몇시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명시해놓고 싸인을 요구했다. 오래된 아파트여서 당시의 건축기준에 따라 수도관이 만들어졌으므로 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명시되어 있었다. 조금 찝찝했지만 싸인을 마쳤다. 와, 임시거처가 아닌 보금자리가 우리에게 드디어 생겼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얼마 남지않은 이사날짜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으로 가구를 주문하고 마트에 가서 생활용품을 구입했다. 이제 진정한 미국생활이 시작되는 것 같아서 설레이고 긴장되었다. 렌트가 시작되는 당일에는 구매한 가구를 배치하고 생활용품들을 옮기고 혹시몰라 아파트를 구석구석 깨끗하게 다시 청소했다. 다시 산타애나로 돌아가야 하는데, 남편은 첫 보금자리가 너무너무 좋아서 집에서 나올 생각을 안했다. 신문지만 있으면 거기서 잘수도 있을 것 같아보였다. 우리는 그 다음날 산타애나 임시거처에 있던 모든 짐을 꾸려서 드디어 우리의 집에 들어갔다. 모든것이 완벽해보였다. 그 때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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