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름 Oct 01. 2020

미국에도 층간소음이 있더라.

어설퍼도, 미국살이.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다 채우고, 드디어 우리의 첫 보금자리로 이사왔다. 한국의 아파트단지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편이지만, 미국치고는 꽤나 대단지의 아파트였다.  꼼꼼하게 주변을 살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조용한 유닛을 골랐기 때문에 처음 남편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아이는 코로나사태가 끝나면 커뮤니티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놀고싶다며 설레어했고, 매일같이 마스크쓰고 킥보드를 타고 달려나가 단지 바로옆에 있는 초등학교의 빈 주차장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나는 매일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기 바빴다. 하루 세끼의 밥을 해먹는 것은 제법 번거로운 일이다. 그냥 한가롭고, 평온하고, 바쁘면서도 그런데 또 할일이 딱히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사한지 정확히 한달 반만에 두번째 보금자리로 이사하게 되었다. 네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카펫 속에 뾰족한 못이 너무 많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리저리 집안을 많이 쏘다니며 재밋거리를 찾아다니는 아들내미가 먼저 발에서 피가나는 상처를 입었고, 다음에는 남편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느라 몸을 숙이다가 무릎이 긁혔다. 남편이 대략 손으로 카펫을 일일이 훑어가며 갯수를 헤아려 보았는데, 도저히 샐수가 없을만큼 못이 많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마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미국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아니었을수도 있을 터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리징오피스에 이메일을 보냈다. 전화로 클레임을 할 수 있었다면 시간을 많이 절약했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오피스는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여튼, 처음에 온 답변은 "너네가 해머로 대충 때려서 지내면 되겠다."였다. 우리는 너무 기가막혀서 아이가 발에 피를 흘리는 사진을 보내주었고 만약 파상풍이라도 걸리게 된다면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이렇게 나오는 것인지 물었다. 오피스에서는 그제야 기술자를 불러서 고쳐주겠다고 하였고, 치료비가 필요하면 청구하라고 하였다. 치료비는 따로 청구하지 않았고 기술자가 와서 상황을 해결해주었다.


 둘째, 벼룩이 있었다. 하루는 아이가 배를 벅벅 긁길래 옷을 들춰보았더니, 수많은 벌레물린 자국들이 배와 등에 가득했다. 전날밤에 씻길때만 해도 안보였는데 너무 이상했다. 그리고 곧 우리 부부도 발목과 발등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남편이 인터넷을 이잡듯이 뒤져가며 물린 상처와 사진들을 대조해본 결과 벼룩으로 추정되었고, 샤워하기 전에 티셔츠를 욕조에서 탈탈 털어 그 실체를 드디어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깨알보다도 더 작고 까만것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튀어올라 사라졌지만, 다행히 욕조 안에 물방울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으니 행동을 취했다. 인근 로이스에서 플리트랩과 벼룩잡는 약을 구매해왔다. 집안에 모든 린넨을 살균세탁하고, 온 집에 가구를 들춰가며 완벽하게 청소하고 나서 약을 살포했다. 두어시간 집을 환기시켜야 하기에 인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렇게 하고나서 더이상 추가적으로 물린 자국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벼룩이 박멸된 것으로 여겨졌다.

 리징오피스에 이메일로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자 "거기 유닛에 깔린 카펫은 완전 새거인데 너네가 이사하면서 벼룩을 데려온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들었다. 우리는 "모든 가구을 이사들어오면서 새로 구입했고, 이사한지 일주일 뒤부터 물린상처가 나타났고(벼룩은 물고나서 며칠이 지나야 간지럽기 시작함), 이삿날 청소기돌려보니 동물털이 한주먹 나온걸로 보아서 카펫은 새거가 아닌것이 분명하다"고 청소기에서 꺼낸 먼지사진을 첨부하여 답변했다. 아이의 몸과 우리의 발, 다리에 만신창이로 물린 사진도 잔뜩 보내주었고 트랩에 걸려든 벼룩의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그제서야 꼬리를 내린 리징오피스는 책임을 다하는 시늉이라도 하고싶어했고, 이미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지만 방역업체를 불러주었다. 전문가가 방문했고, 다시한번 약을 살포해주었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셋째, 심각한 소음진동이 있었다. 4월이 되자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이집 저집에서 에어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어컴프레서가 돌아가며 천장을 진동시켰다. 구글맵으로 집주소를 검색하고 위성사진으로 아파트 지붕을 확대해서 보니, 우리집 지붕에 설치된 에어컨의 에어컴프레서는 모두 여섯개로 확인되었다. 여섯집 중 한집이라도 에어컨을 틀면 소음진동에 시달려야 했다. 좀 심할때는 대화를 할때도 목청을 높여야했다. 어떤 집은 하루 24시간 내내 에어컨을 가동했다. 소음에 취약한 남편에게 먼저 이명과 불면증이 왔고, 곧 나에게도 찾아왔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쉴만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 더이상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심각했다. 처음엔 매우 만족스러웠던 우리집은 악몽으로 가득해지고 말았다.

 리징오피스에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이사들어온지 2주도 되지 않아서 세번째 클레임을 걸려니 우리도 마음이 좀 불편한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의 소음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오피스에서 불러준 기술자가 며칠 뒤 우리집을 방문했다. 상황을 확인하고 지붕으로 올라가 에어컴프레서 밑에 흡음제를 설치해주었다. 하지만 워낙에 강력한 소음진동이라 그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기술자가 다시 우리집에 들어와 소용없음을 확인하더니, 기술적으로는 더이상 어쩔 도리가 없고 리징오피스에 이야기해서 다른유닛으로 옮겨 살으라며 서둘러 사라졌다.

 리징오피스에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막 이사온 유닛에서 자꾸 클레임을 걸어대니 오피스직원도 슬슬 삐딱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기술자가 이렇게저렇게 말했으니 유닛을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규정상 어렵다고 거절당했다. 클레임에 대한 조치를 취해주었으니 할일을 다 했다는 식이었다. 정 나가고 싶다면 수천불의 터미네이션 피를 물고 나가면 된다고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결국 매니저랑 이야기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많은 이메일이 오고갔지만, 유닛을 옮겨줄 의향이 조금도 없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감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으므로 수천불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사를 나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넷째, 심각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나는 층간소음이 한국에만 있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세번째 문제가 이사를 결정하게 만들었다면, 네번째 문제는 이사를 재촉했다. 우리집은 나무로 지어진 2층짜리 아파트의 2층 유닛이었고 평소 1층을 배려해서 아이가 전혀 큰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에너지발산은 스쿠터를 타고 나가 밖에서 얼마든지 시켜주었다. 다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실수로 발도장을 콩 찍을때가 있고,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1층유닛에서 자기네 집 천장을, 그러니까 우리집 바닥을 둔탁한 물건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바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아이의 행동을 단속하고 걸음도 더 조심조심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간의 충격에도 바로바로 바닥에 신경질적인 충격음이 돌아오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어떤날은 아랫집 사람들의 기분이 특히 안좋았는지, 단 한번의 실수에도 수차례 두들겨대는 소리가 돌아왔다.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쿵 소리가 바닥에서 나면 내 가슴도 같이 철렁 내려앉았고, 쿵 소리가 바닥에서 나지 않아도 언제 그럴지 몰라 노심초사해 노이로제가 거의 올 지경이었다. 아이는 틱이 와서 눈을 이상하게 꿈뻑거리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리징오피스에 딱히 알리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글을 찾아보아도 딱히 오피스에서 해줄 수 없는 일이 없고, 결국 이사를 나가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사를 가능한 빨리 나가야지 안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아파트를 계약할 때 코싸인해주신 남편의 보스께서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미국비자를 함께 준비했었던 로펌에 문의해보라고 권해주셨다. 터미네이션 피를 물더라도 이사할 생각이었던 우리는 한번 상담이나 받아보자 싶어서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동안 리징오피스와 주고받았던 메일들과 모든 문제들을 증명하기 위해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사실 우리가 연락드린 변호사는 이민법 전문이고 이런종류의 분쟁은 전공이 아니었지만, 워낙 상황과 증거가 분명해서 소송으로 가더라도 해볼만 하다며 발벗고 도와주시기 시작하셨다. 아마 전화로 클레임들을 처리했었다면 증거들이 분명하지 않아서 어려웠을것이다. 코로나사태로 인해 이메일로 리징오피스와 소통하려니 너무 답답했었지만 일이 이렇게 흘러가고 보니 정말 다행이었다.


 변호사님은 아파트측의 허락을 구할 것 없으니 빨리 살만한 집을 찾아 나가시라고 오히려 우리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이사날짜 2주전에 통보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친히 리징오피스에 내용증명으로 메일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보냈으니까 확인해보세요~"라며 보내주신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캘리포니아 민법 제 몇조에 의하면 임대업자는 임차인에게 안전한 주거환경을 제공할 책임이 있는데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어떠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며...."라며 다짜고짜 펀치부터 날리며 시작한 편지는 "앞으로 Mr. KANG에게 취하실 모든 연락은 저를 통해서 하시기 바랍니다."로 사이다를 터뜨리며 끝맺었다. 와, 우리를 위해 싸워주는 사람이 생기니 이렇게 든든할수가. 정말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우리가 계약한 2년치 월세에 해당되는 수만불의 금액을 지불하지 않으면 당장 고소하겠다며 협박편지를 보내오던 아파트측은, 결국 꼬리를 내리고 디파짓을 포함해 800불만 내고 끝내자고 제안해왔다. 사실 로펌에서는 그 돈도 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아파트를 계약할 때 코싸인해주신 분에게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가해질까봐 빨리 상황 끝맺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디파짓에 몇백불을 더해 800불을 리징오피스에 주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그 돈도 사실 아깝긴 했지만, 수천불이 깨질 뻔 한것을 몇백으로 끝낸것에 만족했다. 부동산일을 하시는 지인의 도움으로 꽤 신속하게 두번째 보금자리로 이사간 뒤 몇개월 후의 일이었다.


 왜 이런일이 생긴걸까 생각하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믿음직한 써포터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어떤 면으로는 정말 감사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집을 구할 때 무엇을 체크해야 하는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주거조건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게된 시간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압박에도 잘 버텨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맷집과 여유는 덤으로 생겼달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