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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Oct 08. 2020

케이크를 찾아서

어설퍼도, 미국살이.

첫 보금자리로 이사하고 나서 곧 우리 여보의 생일이 다가왔다.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두려운 4월 초의 미국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해도, 생일상도 선물도 준비하지 못한 나의 나태함을 만회할 만한 어떤 것이 필요했다. 그래야 나의 생일이 닥쳤을 때 할 말이 있으니까. 에헴. 아무튼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만한 것을 고려해보니 케이크만큼 확실하고 맛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조용히 차키를 챙겨서 출발했다. 한국 베이커리브랜드인 빠리바게트는 집에서 40분거리에 있어서 가기가 망설여졌다. 운전경력이 10년 가깝지만, 미국에서의 운전은 좀 두려웠다. 구글맵에 cake를 입력해서 뜨는 베이커리를 가까운 순으로 뒤져나갔다.


첫 집은 줄이 너무 길었다. 포기.

두 번째 집은 문을 닫았다. 허탕.

세 번째 집은 현금만 받는다. 패쓰.

드디어 네 번째 가게에서 하나 남았다는 케이크를 손에 넣었다. 아주 샛노란 빛깔이 당혹스러운 케이크였다.

케이크가 무슨 색깔인지, 무슨 맛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케이크를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집을 나선 지 두 시간 만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빠리바게트에 갔어도 될뻔했네..


계산을 하면서 "이 케이크를 얻기까지 정말로 긴 여정이었다"고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큰 반응을 기대하진 않았는데, 빵집 주인은 당연히 그럴 만하다고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답하며 감동적인 리액션을 보내주었다. 오, 미국은 이런 곳인가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케이크 박스를 들여다보니 달걀과 동물성 재료가 없이 만들어진 특별한 케이크, 무려 비건 케이크였다. 그러고 보니 빵집 주인은 인도 사람이었고, 아마 종교적인 이유로 비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것일테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건 케이크라니, 오, 미국은 이런 곳인가 싶었다. 빵집주인이 나에게 보여준 감동적인 반응을 다시 생각해보았는데, 그저 케이크를 샀다고 해서 그런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너는 비건케이크를 구매하기 위해 먼길을 찾아온 신념있는 사람이로구나!"뭐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나는 동물성재료와 동물고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뭔가 의도한것은 아니지만 내가 받을만 하지 않은 칭찬을 받은 것 처럼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어쨌거나, 



다행히 어렵게 구해간 케이크를 남편은 크게 놀라고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남편과 아이는 케이크가 뭐 이리 맛이 없냐며 잔뜩 남기고 말았다. 나도 비건케이크인줄 몰랐어 미안해... 그런데 내 입에는 아주 맛있었다. 아마도 구하느라 고생한 사람이 나여서 일 것이다. 여하튼, 올 겨울에 돌아올 내 생일에 대한 보험 하나는 간신히 들어놓은 셈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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