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걸 보며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지금이라도 이 애매한 프리랜서 생활을 그만두고 취업을 할까. 아니 그전에 나를 뽑아줄 회사가 있긴 한가. 만약 되더라도 지방 디자이너가 그렇게 박봉이라던데 내가 굳이 취업을 할 필요가 있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때에 캘리그래피 모임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네이버 파트너스퀘어가 새로 생기는데 입주작가를 뽑는데요! 관심 있는 분들 지원해 보세요]
이게 무슨 말이지. 당장 검색해 봤다. 네이버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파트너스퀘어를 서울, 부산 등에 만들었는데 이번에 광주에도 새롭게 파트너스퀘어를 만들면서 한 층을 창작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공간에 입주할 1기 입주 작가를 모집 중이었는데 순간 솔깃했다. 어쩌면 내게 작업실이 생기면, 지금보다 일이 더 잘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종종 붓으로 캘리그래피 작업을 했는데 나의 좁은 원룸에서는 화선지를 펴는 것도 일이었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6개월간 무료로 지원해 주고, 홍보 영상 촬영에 각종 컨설팅까지 진행 준다는 내용은 너무 매력적이었지만 잠시 걱정이 앞섰다. 내 부족한 경력으로도 신청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걱정은 잠시 뿐, 어차피 결과는 해봐야 아는 거니까.
나는 급하게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청 마감일까지 1-2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이 날 밤에 신청해 버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작업물을 정리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제출하기 전까지는 심장이 너무나도 두근거렸는데 막상 제출하고 나니 긴장이 확 풀려버렸다. 일은 저질러졌고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잠이나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서류 심사 합격 연락을 받았다. 내가 서류를 합격했다고? 어딘가에 지원해 본 경험 자체가 거의 없던 내게는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두근거렸지만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당연하게도 면접에서 탈락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면접 후기라고는 온갖 취업 면접 후기밖에 보질 못했던 나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난감한 질문을 들은 사람 마냥 벌벌 떨고 있었다.
면접장에 들어가자 세 분이 앉아계셨다.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아마도 파트너스퀘어 팀장님과 담당자분들이었던 것 같다. (반년 내내 잘 챙겨주셨는데 기억을 못 하다니, 죄송합니다..) 그때의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해도 웃길 정도로 심하게 긴장했었다. 담당자분들은 나를 보며 긴장할 필요 없다며 농담을 건네셨고 그제야 내 눈앞에 사람들이 나를 깐깐하게 심사하려고 온 사람들이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기 위해, 입주 작가 공간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지에 대해 알기 위한 사람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면접은 순탄하게 이루어졌고 역시나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파트너스퀘어는 입주작가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기 때문에 연령대 또한 고려할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40대 정도의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잘 어울릴 수 있겠어요?”
물론 나는 무조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캘리그래피 공방에 다니면서 나이 많은 언니들과 지내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분들이 어린 나를 많이 배려해 줬기 때문이었지만. 아무튼, 웃으며 면접을 마무리 지었다. 면접이 끝나고 귀여운 브라운 마사지봉(?)과 여러 가지 라인 제품들이 담긴 쇼핑백을 하나를 건네주셨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내 인생의 첫 면접이 이렇게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이라니, 면접에 떨어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이 경험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최종합격 연락을 받게 되었다. 진짜로 파트너스퀘어 1기 입주작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입주작가 경험은 내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다.
네이버파트너스퀘어 광주는 코로나 이후 입주작가 모집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혹시라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